[한미원자력협정 타결] 핵연료 자주권 없는 반쪽 협상

우라늄 20%미만 저농축 美와 협의하에 해야
파이로프로세싱도 전반기 과정만 수행 가능
사용후 재처리 시급한데 기술확보 어려워

울진 한울 1호기에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이를 재처리하면 핵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 /사진제공=한수원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농축과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활용)의 일부 과정만 수행할 수 있게 돼 반쪽짜리 협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핵심적인 핵연료 분야인 농축과 파이로프로세싱에 가해졌던 제약이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과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해서라도 농축권한과 파이로프로세싱 부분은 더 얻어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5대 원전 강국이면서도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재처리)하지 못해 원전 연료 자주권 확보에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22일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과의 이번 협상을 통해 미국산 우라늄의 20% 미만 저농축에 대한 길을 열었다.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양국이 합의하면 농축을 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든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발전소에서 쓰이는 우라늄은 통상 4~5% 농축돼 있는 것이며 연구용 원자로는 15~18% 농축 우라늄을 쓴다"며 "20% 미만이라 해도 평화적으로 이용 가능한 우라늄 전체를 다 포괄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농축 자체를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만 할 수 있게 제한돼 있는데다 고위급위원회의 절차와 기준에 적합할 때라는 모호한 규정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또 고농축 기술 연구를 할 수 없다는 점은 여전해 기술력 향상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결국 아주 제한적 범위 내의 농축작업조차 미국과의 협의하에 할 수 있고 그 장소마저 한정돼 있는 셈이다. 협정 내용을 적용하면 발전용과 연구용 등 다목적으로 쓰이는 농축 우라늄을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외국에서 우라늄을 농축한 뒤 국내로 들여오는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의 연료인 농축 우라늄 수입에 한 해에만 1조원에 달하는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이로프로세싱도 마찬가지다. 파이로프로세싱의 전반기 과정인 '전해환원'만 수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협정에서 정부는 현존시설 내 조사 후 시험과 전해환원을 할 수 있는 장기동의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전해환원은 사용후핵연료에 전기를 통과시켜 산소를 떼어내고 금속으로 만드는 공정을 뜻한다.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 민감한 핵물질은 분리되지 않는다. 반대로 해석하면 전해환원은 가능하지만 다음 단계인 전해정련과 전해제련 이 두 과정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셈이다. 제무성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전해환원과 조사 후 시험 등 모두 예전보다는 전향적인 내용인 것은 맞다"면서도 "협정 내용이 매우 모호해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이 얻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은 한미 공동연구가 진행 중인데다 실제 적용 여부를 두고도 논란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독자적인 기술 확보는 중요한 과제다. 재처리·재활용 기술 확보는 사용후핵연료 저장공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용후핵연료의 경우 국내 원전 부지 4곳의 발전소 수조에 임시저장 중이다. 임시저장용량이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분명히 성과는 있지만 현 23기에서 40여개로 늘어날 원자로에 안정적으로 연료를 공급하고 사용후연료 처리와 위기상황에 대비한 기술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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