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600만원짜리 청약예금을 10년 넘게 갖고 있던 30대 가장 정모씨는 얼마 전 예금을 깼다. 숱하게 청약을 했지만 계속 실패했던 그는 몇 년 전 대출을 끼고 매매로 아파트를 마련했다. 1순위 자격이 아까워서 통장을 남겨뒀지만 이제는 당분간 아파트 청약할 생각이 없는데다 대출부터 줄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1순위 통장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
사례2=1,500만원과 1,000만원짜리 통장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부부는 최근 남편 이름으로 돼 있던 1,500만원짜리 통장을 600만원짜리로 낮췄다. 과거에는 대형 아파트가 돈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이제 중소형 아파트가 대세라는 판단에서다.
장기간 보유했던 청약통장을 해지하거나 예치금을 줄이는 등 청약통장 '다이어트'가 늘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 아파트 청약에 대한 수요가 과거보다 줄어들면서 청약통장을 깨서 대출을 갚거나 생활 자금으로 쓰는 경우도 많아졌다.
◇수도권 청약통장 석 달 새 13만개 사라져=10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3개월 동안 수도권 청약저축ㆍ부금ㆍ예금 통장은 각각 4만719개, 1만9,903개, 4만6,845개 등 총 10만7,467개가 줄었다. 같은 기간 주택청약종합저축 역시 2만5,795개나 감소했다. 수도권에서만 3개월 동안 13만3,259개의 청약 관련 통장이 줄어든 것.
그나마 청약열기가 살아 있는 지방에서는 통장 가입자 수가 늘고 있지만 수도권 통장 가입자 감소폭이 이보다 커서 전체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3개월 연속 줄었다. 지난해 11월 말 1,497만4,608명이었던 전체 가입자 수는 12월 말 1,487만8,239명으로 9만6,369명이나 줄었다.
김홍기 우리은행 주택기금부 팀장은 "최근에는 지방 청약열기 때문에 통장 숫자 감소폭이 주춤하지만 수도권은 예금ㆍ부금을 중심으로 여전히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출상환ㆍ생활자금이 급해서=은행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전세금 마련, 대출상환 목적, 생활자금 마련 등의 용도로 청약통장을 해지하거나 예치금을 줄이는 사례가 많다.
신한은행 영업부 관계자는 "지난 2009년 주택청약종합저축 도입 당시 시중은행들의 판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족 구성원 별로 가입한 경우가 많았다"며 "생활 자금이 필요한 경우 이런 통장부터 해지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청약통장의 경우 중도해지에 따른 금리 불이익이 없어 쉽게 해지 대상이 된다.
이경희 KB은행 올림픽지점 과장은 "유주택자의 경우 보금자리주택ㆍ청약가점제 도입 등으로 알짜 지역 당첨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통장 보유 메리트가 줄어든데다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가 낮아 청약통장이 가장 먼저 정리 대상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청약예금 금리는 은행 별로 차이는 있으나 대략 3% 중반대이며 주택청약종합통장은 2년 이상 4.5%, 2년 미만 3.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