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6월13일] 고셋 & 흑맥주

1904년 더블린. 기네스(Guinness) 맥주 맛이 한결 좋아졌다. 양조공정을 통계학으로 관리한 덕분이다. 맥주 맛을 결정하는 이스트의 함량을 확률이론으로 조절하기 시작한 후 어떤 맥주통에서든 균등한 품질의 흑맥주가 나왔다. 양조장에 통계학을 도입한 주인공은 윌리엄 고셋(William Gosset). 종교의 자유를 찾아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위그노(신교도)의 후손으로 1876년 6월13일 캔터베리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수학과 화학을 공부한 후 1899년 기네스 맥주에 들어갔다. 화학전문가 자격으로 입사한 고셋의 임무는 품질 규격화. 실험은 어려웠다. 맥아나 효묘의 성질이 늘 변하는데다 온도와 습도에도 민감해 통계축적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고셋은 소량의 샘플로 전체를 유출해내는 추측통계 개념을 도입해 문제를 풀었다. 고셋의 성과는 당대 최고의 통계학자였던 피어슨의 한계의 뛰어넘는 것이었지만 발표할 수 없었다. 기네스가 사내연구의 공표를 금지했기 때문. 고셋은 고민 끝에 ‘스튜던트(student)’라는 가명으로 학술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학위도 없고 학회 회원도 아니었지만 ‘재야의 고수’인 고셋은 후학도 길러냈다. 피어슨에 이어 20세기 통계학을 정립한 피셔가 두각을 나타낸 것도 고셋과의 지적 교류를 통해서다. 고셋의 황금기는 1934년 자동차 사고를 당한 후 1937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3년.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회사 업무를 떠나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 ‘스튜던트’가 고셋이라는 사실은 사망 이후에야 알려졌지만 그의 업적은 오늘날 생산공정과 여론조사에서 활용되고 있다. 표본조사와 통계적 품질관리, 발췌검사법의 원형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고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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