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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는 1924년부터 1년간 한 일간지에 장편소설 '재생(再生)'을 연재했다.
춘원은 이 소설에서 당대 신여성들이 돈을 좇아 자유연애를 추구하다 결국 버림받는 비참한 말로를 그렸다. 세부적으로는 '독립운동사건'과 '주식·미두'를 기술하며 당대 사회의 여러 실상을 부각시켰다.
미션스쿨의 신여성인 순영은 가난한 청년 봉구와 주식 갑부 백윤희 사이에서 갈등한다. 가치관의 혼란을 겪던 순영은 결국 미두 실패로 큰 빚을 진 오빠의 꼬임에 넘어가 2만원의 돈에 팔리다시피 백윤희의 후처로 시집을 간다. 3·1운동으로 2년 8개월간 복역 후 출소했지만 애인에게 배신을 당한 봉구는 복수를 위해 돈을 벌기로 마음 먹고 인천미두취인소의 '김연오 취인점'에 말단으로 취직한다. 장 마감 10분을 남겨두고 전보통신(증권가 정보지)에서 '독일의 전쟁배상 지불 거절' 루머를 접한 봉구는 점주로 하여금 미두 선물 만석을 매도하는 한편 경성의 '백낙삼 취인점'에 급전을 해 보유한 주식도 전부 팔아 치웠다. 주말을 넘긴 후 주식과 미두가 폭락세를 보이자 점주는 4일 만에 주식에서 2만원, 기미에서 3만원을 거머쥐었다. 신뢰가 쌓인 점주는 봉구를 사위로 삼고자 재산 관리까지도 맡겼다.
증권가의 큰손이자 연적(戀敵)인 백윤희의 주문을 받으러 월미도 별장을 찾아간 봉구는 그곳에서 산후조리 중이던 순영을 재회했고 함께 있던 갓난아기가 자신의 아들임을 직감한다. 복수를 위해 미두꾼이 됐던 봉구는 운명처럼 미두로 인해 순영과 자신의 아들을 만난 것이다. 주식과 미두는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의 금융가 실제 인물도 여럿 등장한다. 봉구가 취직한 김연오 취인점은 소설이 연재되기 2개월 전 실제로 인천에 개업한 '김인오(金仁梧) 취인점'이다. 배금주의자로 대변되는 '대정무역' 사장 백윤희는 실제로는 종로 육의전 거상출신이자 '대창무역' 사장인 백윤수(白潤洙)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조부다. 봉구가 주문을 내던 경성의 백낙삼 취인점 점주도 백윤수의 실제 3남이다.
소설 재생에서는 미두가 갈등의 발단이기도 하지만 해결의 매개이기도 하다. 소설의 후반 독립군 자금 제공을 거부하던 점주가 아들에게 살해당하자 봉구가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사형집행 직전 소박의 위험을 무릅쓰고 순영이 증인으로 나서며 봉구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줬다. 둘은 화해의 실마리를 찾는다. 소설의 앞부분이 전락의 과정이라면 뒷부분은 회복의 과정인 셈이다. 춘원이 이 소설에서 '미두와 주식'을 매개로 그리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재생이다. 개인투자가들이 떠난 지금의 여의도 증권시장에도 재생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