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 홀!] 경기 광주 이스트밸리 동코스 4번홀

■ 호수 같은 연못에 비치 벙커… 홀인원 명당
잔잔한 수면에 주홍빛 햇살… 평범한 사람을 철학자로 만드는 4번홀
7번홀은 '조은정 캐디홀'… 한달새 동반 고객 3명 홀인원



골퍼라면 누구나 바라지만 아무나 이룰 수 없는 것, 바로 홀인원이다. 홀인원 확률은 1만2,000분의1이라고 한다. 유독 당첨자가 많이 나오는 복권 판매점처럼 골프에도 홀인원 명당이 있다. 이스트밸리CC의 4번, 7번 홀도 그런 홀이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이스트밸리는 회원권 시세가 7억원을 오르내리는 인기 골프장이다. 유명 코스 디자이너인 개리 로저 베어드(미국)가 설계해 2001년 10월 개장했다. 앤티크(고전미)풍 가구와 소품으로 꾸민 아늑한 클럽하우스로도 이름난 곳이다.

설계가 로저 베어드가 가장 공을 들인 시그내처 홀은 동코스 4번홀(파3). 이 홀에서는 매년 7, 8차례 홀인원이 나온다. 블루 티 159m, 화이트 티 151m의 이 홀엔 왼편에 호수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큰 연못이 자리잡고 있고 연못과 그린 사이엔 비치 벙커가 길게 뻗어 있다. 티잉 그라운드에 섰을 때는 연못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린에 올라가 티잉 그라운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압도적인 경관에 가슴이 뻥 뚫린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집오리들의 보금자리도 있는데 계절에 따라 야생오리들도 놀러 와 함께 노닐며 흔치 않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낮도 좋지만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 4번홀 그린에 서기를 추천한다. 이때의 4번홀은 평범한 사람을 철학자로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날의 라운드뿐 아니라 밟아온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곳이다. 잔잔한 수면에 부서지는 주홍빛 햇살을 마주하다 다시 그린 위로 눈을 돌리면 홀까지의 거리가 남은 삶의 길이처럼 느껴진다. 물론 홀아웃하고 나면 다음 홀에서 전혀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2010년 11월 이 골프장 동코스 7번홀(파3)에선 앞 팀 한 명에 이어 뒤 팀에서도 한 차례 홀인원이 나오는 '릴레이 홀인원'이 나왔다. 같은 해 6월에는 한 골퍼가 서코스 9번홀(파4)에서 홀인원이자 알바트로스(기준 타수보다 3타 적게 홀아웃)를 잡았다. 326m 거리인 블루 티에서 시도한 드라이버샷이 카트 도로를 맞고 홀 속으로 숨어버렸다. '파4 홀인원'은 전세계적으로 봐도 1년에 10차례도 나오기 힘든 진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스트밸리에서 홀인원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고객이 아닌 캐디다. 주인공은 조은정(24)씨. 조씨는 이 골프장에서 일한 지 2년밖에 안됐지만 회원들 사이에서 인기 폭발이다. 그는 지난해 동코스 7번홀(파3)에서 5월 한 달에만 세 차례나 홀인원 손님을 모셨다. 5월15일과 22ㆍ30일 조씨를 캐디로 대동한 골퍼들이 각각 피칭 웨지를 들어 한 번에 홀인 시켰다. 홀인원한 볼은 전부 타이틀리스트의 공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이 홀을 '조은정홀'이라고 부른다.

"홀인원 기념으로 고객님들한테 떡도 엄청 얻어먹고 고맙다는 인사도 많이 받았다"는 조씨는 "한 달 새 같은 홀에서 세 번이나 홀인원을 받은 캐디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한 명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그렇게 쉬운 홀은 아닌데 내리막 경사를 타고 쏙 들어가더라. 그 홀에서만 여섯 번 홀인원을 받다 보니 나도 직접 치면 왠지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웃었다. 동코스 7번홀은 블루 티 126m, 화이트 티 115m로 짧은 파3 홀이다. 게다가 내리막 홀이라 그린 앞에 도사리고 있는 벙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조씨에 따르면 핀 왼쪽으로 한 클럽 정도 지점에 볼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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