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난 대책 배경
"이대로 가다간 연쇄도산" 국책은행 동원 응급처방
산업은행을 고리로 한 정부의 자금대책은 마비상태에 이른 연말 자금시장에 '링거주사'를 흡입하는 응급처방이다. 대기업의 생존을 위해 사실상 국민 혈세를 동원한 것이다.
은행권이 연말 구조조정 한파에 몸을 사리면서 금융시스템이 마비된 데 이어 국민ㆍ주택은행 파업까지 덮치면서 자금난이 4대그룹에까지 미치자 국책은행을 긴급 동원한 셈이다.
여기에 내년에도 60조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함에도 종전 채권담보부증권(CBO)ㆍ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등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이대로 가다간 상당수 중견 대기업이 내년 1분기를 고비로 줄도산한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
◇자금대책 왜 나왔나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현 자금시장은 분명 위기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감독당국 종용에도 은행은 늘어난 예금의 70%를 국공채에 몰아넣었다. 구조조정도 마무리되지 않은 마당에 연말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관리도 벅차다.
기업어음(CP)시장도 얼어붙었다. 올들어 CP 발행잔액은 20조원 규모로 지난해(95조)의 20% 수준이다. 금리는 왜곡돼 신용등급 A+와 BBB-등급간 금리차가 지난 6월 말 1.93%에서 5개월새 3.48%까지 벌어졌다.
중소기업의 구세주였던 신용금고와 종금사는 기능을 상실했다. 기업 당좌한도 소진율은 가파른 상승세다. 97년 말 발행 회사채 만기와 98년 말 발행된 2년짜리 회사채 만기가 겹치면서 일부 4대그룹 계열사들마저 숨을 허덕이고 있다.
◇어떻게 지원하나
재경부는 내년에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규모가 65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이중 차환발행에 애로가 있을 수 있는 규모를 25조원으로 계산했다.
이중 워크아웃ㆍ법정관리ㆍ화의 등을 제외하면 실제 기업들이 부담할 규모가 줄지만 한꺼번에 상환이 돌아오면 도산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 이날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지원구조는 회사채 만기상환에 몰린 기업이 사모사채를 발행하면 이를 산업은행이 80% 인수한다. 20%는 기업 자체적으로 흡수해야 한다.
결국 회사채 만기물량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산업은행이 대출해주는 셈이다. 기업은 이 돈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상환한다. 산업은행은 인수물량을 CBOㆍCLO 편입(70%), 채권은행 재인수(20%), 산은 자체 보유(10%) 등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한다.
대상기업은 4대그룹 계열사를 포함한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이번 대책이 특히 회사채 만기물량이 많은 특정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채권은행ㆍ산업은행ㆍ신보가 참여하는 협의회를 구성, 지원대상과 지원여부, 인수규모를 결정한다.
이러한 구조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는 별도로 중견 대기업 회사채를 대상으로 신용보증기금과 산업은행등 거래은행이 공동으로 100% 보증하는 방안도 나왔다. 세부내용은 이날 발표되지 않았지만 곧 산업은행에서 발표할 것이라고 재경부는 밝혔다.
◇산업은행 지원, 역시 대증요법
정부가 하반기들어 연거푸 내놓은 자금대책의 줄기는 채권펀드. 하지만 1차 채권펀드 조성이 근근히 이뤄진 데 이어 이달 중 예정됐던 10조원 규모의 2차 채권펀드도 연기금 출연실적 저조와 구조조정에 몰린 은행권의 미온적 자세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달 초 도입한 CLO도 은행들이 대출풀에 포함되는 대상은 신규자금 대출로 한정, 만기 회사채의 차환발행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신용보증기금의 재원확충도 당장의 자금난 해갈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를 막을 수단으로 강구한 게 산업은행이 곧바로 회사채를 인수하는 것. 정부는 복잡한 시스템을 동원했지만 결국엔 산업은행이 직접 대기업 자금난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산업은행의 힘이 소진되면 재정(국민세금)을 추가로 넣는다. 그렇다고 산업은행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지원할 수는 없다.
결국 장기 대책은 금융시스템 복원에 있다. 복원의 1차 과제는 구조조정 마무리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부 당국의 선제적 정책 부재에 따른 불신감이다. 정부 당국이 시장을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안의식기자
김영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