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정부의 벤처 지원 제도에 '거품(버블)'이 끼여 있으며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정책에 대한 재점검 작업이 필요하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KDI는 최근 5년간 벤처기업 수가 급증했지만 '제2의 벤처 붐'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동시에 내놓았다. 무늬만 벤처 기업인 곳이 수두룩하며 이에 대한 정책 지원도 겉돌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2일 발표한 '제2의 벤처 붐을 맞고 있는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0년 말 현재 벤처로 인증된 기업 4만8,531개 가운데 본래 벤처기업 의미에 맞는 '벤처투자기업'은 622개로 비중이 2.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투자기업이란 벤처캐피털 등에서 자본금의 일정 비율을 투자 받은 기업을 의미한다. 반면 기술평가 보증 및 대출기업은 2만2,321개로 90.6%나 차지했다. 기술평가 보증ㆍ대출 기업은 공공기관인 기술보증기금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기술이 우수한 중소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유형이다.
보고서는 벤처기업으로 인증된 기업 수가 지난 2001~2001년 'IT버블'이 붕괴한 후 2003년부터 반전해 2006년 이후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이지만 이는 정책지원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기완 KDI 연구위원은 "2000년대 후반 들어 빠르게 증가한 벤처기업 수는 벤처캐피털 활성화에 따른 결과라기보다 정책적 지원대상인 기술평가 보증ㆍ대출기업의 벤처인증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라며 "혹시라도 벤처지원제도의 남용을 가져오지 않을지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벤처캐피털이 정책자금에 자리를 내준 것은 벤처캐피털이 보수화된 탓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신규 벤처투자기업의 규모는 현저히 커졌다. 벤처캐피털이 투자에 보수적일 경우 모험적 창업의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어 벤처캐피털 확충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10년 이상 벤처확인기업 명단에 머무는 기업 수가 1,309개에 이른다며 이는 기업들이 벤처지원제도의 틀 안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의 벤처지원제도가 기업의 성장을 유인하기보다 계속 벤처 지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