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 폭탄'에 멍드는 교단

숟가락 숫자까지 보고… 서울 학교당 하루 최대 36건 처리
학생들 가르치기도 바쁜데 불필요한 공문 때문에 몸살 핀란드 한 달 1건과 대조적


서울 소재 A고등학교는 올 들어 지난 4월30일까지 4개월 동안 4,810건의 공문을 처리했다. 근무일이 83일이니까 하루에 57건을 처리한 셈이다. 이대로라면 A학교는 올 한 해 1만 4,000건이 넘는 공문을 처리해야 한다. 공문폭탄이다.

학생들 가르치기에도 바쁜 선생님들이 공문폭력에 멍들고 있다. 굳이 보낼 필요가 없는 공문을 마구잡이로 보내 선생님들이 받는 공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문가들은 학교의 자율권을 확대해 공문을 만들어야 하는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2010년 서울시교육청이 조사한 공문서 현황에 따르면 서울 소재 초등학교가 연간 받는 공문은 한 학교당 8,296건이었다. 중학교는 학교당 7,670건이었으며 고등학교의 경우 8,98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공문 건수를 1년 365일 중 공휴일(법정휴일 기준 통상 118일)을 제한 247일로 나누면 학교당 적게는 31건에서 많게는 36건의 공문을 처리하는 꼴이다. 올해는 학교폭력과 주5일제 토요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공문이 더 늘었다.

러시아에서는 교육감의 교육철학을 담은 장학계획 1건, 이에 따른 세부 내용을 담은 세부교육활동지침 1건 등 1년에 총 2건의 공문만 학교에 발송된다. 교육선진국 핀란드의 일선 학교가 받는 공문은 한 달에 한 건 정도다.

교육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공문이 남발되는 점을 지적한다. 상명하달식 업무 구조에서 결국 공문으로 모든 일이 처리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직원총연합회가 경기도 B고등학교의 2010년 공문 5,933건을 분석한 결과 불필요한 공문이 1,768건으로 약 30%였다.

경기도의 C고등학교 교사는 "공문을 보내지 않는 '공문 없는 날'이 있지만 처리할 공문을 하루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며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일선 고교 근무 경험이 있는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공시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며 "무상급식을 앞두고 학교 기물 현황을 체크하겠다며 숟가락ㆍ젓가락 개수까지 보고하라는 공문을 받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교사와 교육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학교의 자율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시도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사업을 줄이고 학교에 예산을 배정해 필요한 곳에 직접 쓸 수 있도록 교육 자치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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