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 포커스] 과열 치닫는 은행 중기대출 경쟁

"역마진도 불사"… 너도나도 퍼주기식 영업
몸값 높아진 우량중기 쇼핑하듯 은행 갈아타기
정작 돈 필요한 영세기업은 금융 지원 사각지대 놓여



올해 중소기업 지원 강화를 전면에 내세운 외환은행은 지난 2월 초부터 전국의 영업점을 대상으로 '1ㆍ2ㆍ3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지점장들이 '하루'에 '두 곳'의 신규 중소기업을 유치하고 기존 거래기업 중 '세 곳'을 매일 방문한다는 의미다. 캠페인은 구호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각 지역 본부장이 매일 지점별 활동내역을 보고 받을 정도로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외환은행의 한 관계자는 "캠페인 실천 내용을 지점별 경영평가에는 반영하지 않지만 은행장까지 나서 관심을 갖는 사항"이라며 "점포장들이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돌아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25일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화두는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 지원이다. 이를 의식한 듯 모든 시중은행이 최우선 순위에 중기지원 확대를 올려놓고 있다. 영업현장에서는 중기 고객 유치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치열하다. 우량 중기 유치를 위해 출혈 경쟁까지 불사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작 급전이 필요한 영세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시중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부익부빈익빈이다.

◇중기 올인…'역마진도 불사"=시중은행의 기업대출 담당자들에게 '업체 섭외'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영업 경쟁의 강도가 어느 때보다 심하다는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수도권 공단에 위치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한 관계자는 "역마진을 불사하더라도 중소기업을 신규로 유치해오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있다"며 "타행에서 기업체에 제안하는 금리 수준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낮다"고 말했다.

본점에서 영업점별로 무리한 수준의 대출 목표치를 할당해주면서 영업점이 출혈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감독 당국은 "출혈경쟁을 촉발할 우려가 있다"며 각 영업점에 할당량 하달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당국 방침과 딴 판이다.

우리은행은 2월부터 오는 4월 말까지 석 달 동안 '희망드림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중기 대출부문에서 3조5,000억원 유치를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하나은행도 3월 말까지 영업점별로 중기 신규대출을 100억원 이상 유치하는 캠페인을 내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같은 은행 내에서도 영업점별로 서로의 영업권역을 넘나들며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시중은행들은 올해부터 지점 경영평가에서 중기 유치 항목 비중을 크게 확대했다. 대덕연구단지 내 시중은행 영업점의 한 관계자는 "구도심 영업점 관계자들이 최근에는 신시가지(대덕연구단지)까지 진출해 영업을 벌이며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같은 영업권역을 놓고 타행뿐 아니라 같은 은행 내에서도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우량 중기 "은행원 사절"=유치 경쟁이 신용등급이 우수하거나 담보력이 탄탄한 우량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는 것도 문제다. 남동공단에서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D사의 임원은 "하루에도 3~4곳의 은행 사람이 찾아와 정상 업무가 힘들 정도"라며 "사전 약속 없이 회사를 찾아오는 은행원은 경비실에서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귀띔했다.

우량 중소기업의 몸값이 상승하며 '쇼핑 하듯'이 주거래 은행을 갈아타는 중소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미끼 금리 상품으로 우량기업 유치에 나서면서 1~2년에 한번씩 주거래 은행을 바꾸는 기업체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주거래 은행 한 두 곳을 정해놓고 장기로 거래할 때 제공되는 금융혜택보다 타행으로 갈아탈 때 제공해주는 금리 혜택이 더 크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정작 자금사정이 절실한 영세기업은 여전히 금융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재무제표가 좋고 이익이 잘 나는 곳 위주로 영업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거래 중인 영세 기업 가운데 신용도가 하락한 곳들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타행으로 '퍼내기 작업'을 하고 있다"며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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