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기업이미지가 땅에 떨어지고 오너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주들이 회삿돈과 자기 돈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에서 이런 인식과 관행이 만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외부감사를 받고 있는 상장ㆍ등록기업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22일 국회 재경위의 국세청 국감에서 드러난 사주와 가족들의 법인카드 변칙사용 실태는 이 같은 만연된 현상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법인카드를 기업주가 개인적으로 사용한 사례가 매년 100만건 내외씩 적발되고 있다. 법인카드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다가 국세청에 적발된 건수 및 추징금액은 2001년 120만건(법인 2만3,493개사) 3,500억원, 2002년(1~9월) 70만건(1만2,696개사) 2,500억원에 달했다. 한 악덕 기업주는 연간 10억원 이상의 회삿돈을 생활비로 썼다가 덜미를 잡혔다.
매출액에 비하면 적은 액수라지만 그 것이 파생시키는 여러가지 해악들을 생각할 때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자그마한 구멍 하나가 댐을 무너뜨리듯 이 같은 관행이 한국 경제, 나아가 한국의 자본주의까지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업주의 기업자금 유용은 비용증가를 유발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회계부정과 세금포탈로 연결돼 기업을 수렁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또 소액주주들도 큰 피해를 당하게 된다. 기업주의 그릇된 행동이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당국의 적발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사용(私用)사례가 연간 100만건 수준으로 전혀 줄지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지금처럼 법인카드의 사적 사용액을 해당 기업에 통지해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특별세무조사와 법인세 중과 등 더욱 엄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본가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는 내팽개친 채 사적(私的) 이익만을 탐하는 이른바 천민(賤民)자본주의적 속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의 앞 날은 어둡다. 회사 돈을 내돈처럼 빼돌리는 악덕 기업주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를 살리는 바른 길이다.
<이상훈기자 sh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