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 살릴 레시피를 부탁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본격 여름이다. 따가운 햇살과 높은 습도에다 잠 설치는 열대야까지 고역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운 돋우는 음식 생각이 간절하다. 보양식하면 삼계탕, 추어탕, 장어요리가 으뜸이다. 조금 찬 음식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싶다면 단백질이 풍부한 콩국수나 냉국도 괜찮다.

예전에는 음식을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아가거나 아내에게 부탁하면 됐다. 하지만 먹방(먹는 방송)을 넘어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대세고 남자도 요리 한 두개는 해야 하는 시대다. 마냥 주문해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차줌마’는 섬마을 아궁이에서 식빵을 구워내고 ‘백선생’은 집밥을 뚝딱 만들어내는 걸 보면 ‘나도 한번 해봐’ 하는 용기도 생겨난다.

방송 전문가들은 쿡방의 인기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남자가 요리하는 모습은 가부장적 전통을 깬 것으로 여성층의 호응이 높다. 최근에는 독신남부터 중장년 남성까지 요리의 세계에 가세하고 있다. 각박한 세상에 맛있는 요리와 음식은 대리만족을 주고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울림이 된다. 요즘 우리 경제는 내우외환에 시름이 깊다. 내수회복은 미약하고 세계경기 침체로 수출마저 흔들리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음식을 만들어내는 쿡방에서 한국경제를 살릴 조리법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식재료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다. ‘백선생’은 방송에서 “무슨 요리를 하든 원재료에 대한 믿음을 갖고 시작해야 된다”고 말했다. 경제활동에서 주된 재료는 기업과 사람이다. 기업은 사업을 일구고 사람은 근로와 소비에 기여한다. 우리의 기존 주력산업은 성장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아직까지 뚜렷한 신성장동력은 찾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과 노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미래를 이끌고 갈 신세대층은 점점 얇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6.25 전란 이후 세계 14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저력이 있다. 불굴의 도전정신과 남다른 끈기가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다시 한번 미래를 내다본 과감한 행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맛을 살리려면 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경제로 치면 제재와 지원이다. 기초여건이 부족한 신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에 대해서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어느 정도 형성된 후에는 직접 개입은 줄이면서 투자, 고용, 수출 등 바람직한 행동을 북돋우는 인센티브를 강화해 자원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엄정한 법질서 확립과 시장교란행위에 대한 제재를 통해 성장사다리, 건강한 생태계가 작동하게 하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 음식은 정성이고 손맛에 따라 달라지듯이 경제정책도 시대상황, 기업현장에 맞는 정책을 적절히 조합하는 것도 필요하다.

불 조절도 중요하다. 곰탕처럼 푹 고아야 하는 음식이 있는가하면 라면처럼 살짝 덜 익혀야 꼬들꼬들한 식감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요리가 있다. 전기밥솥의 등장으로 거의 사라졌지만 원래 밥 짓기는 불 조절이 녹록치 않다. 자칫하면 아랫부분은 타고 윗부분은 설익는 삼층밥이 되곤 했다. 정책에도 타이밍이 존재한다. 시장은 애가 타는데 늦장대처를 하든지 호황인데 부양책을 내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경제정책은 실행되고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차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재정정책은 시차가 짧고 통화정책은 길며, 다른 정책들도 각각의 시차를 갖고 있다. 당국은 정책의 우선순위와 시차를 잘 고려해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을 나누며 살아왔다. 큰 일을 치를 때는 두레라고 해서 음식도 같이 만들었다. 우리 경제는 배곯던 시대를 지나 맛을 음미하고 독창성을 발휘해야 할 시기에 다다랐다. 복작거리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제품과 서비스가 특별하다는 걸 확실히 심어주어야 한다. 민관이 힘을 합쳐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한국경제를 살릴 레시피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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