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원유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고공 행진하는 유가를 잡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내각은 1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 "고유가가 세계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기름값을 공정한 수준으로 돌려놓기 위한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최근 적정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이라고 거듭 강조해왔지만 이날 4월 인도분 북해산브렌트유는 배럴당 125.65달러를 기록하는 등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고삐 풀린 유가를 잡기 위한 사우디의 해법은 원유증산과 수출확대다. 알리 이브라힘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올 초 CNN과의 인터뷰에서 "단지 밸브를 돌리는 것만으로 하루 최대 1,200만배럴가량을 생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FT는 "사우디가 이미 30년 만의 최대 수준인 하루 1,0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고 이날 전했다. 사우디는 또한 지난 1980년대 운영을 중단했던 일부 유정을 다시 가동하는 한편 새로운 유전개발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증산효과 극대화를 위한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사우디 국영 석유업체인 아람코는 최근 200만배럴 이상의 원유를 한꺼번에 운반할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VLCC) 사용계약을 11건이나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람코의 석유운송 자회사인 벨라는 보통 한달에 1건 정도 VLCC 사용계약을 맺어왔다. 대량의 원유를 일시에 공급해 불길을 잡겠다는 얘기다. 투자은행인 달만로즈의 오마르 녹타는 "막대한 양의 원유가 수주일 내 미국에 도착하면 기름값이 가파르게 하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유생산국 간 공조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ㆍ쿠웨이트ㆍ카타르ㆍ바레인ㆍ오만 등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걸프협력회의(GCC)는 20일 도하에서 석유장관회의를 열어 기름값을 잡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UAE와 쿠웨이트의 경우 하루 수십만배럴가량을 추가 증산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사우디가 이란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원유값을 잡는 소방수 역할을 자처한 것은 미국 등 서방사회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원유값 상승이 글로벌 경제회복에 최대 위협요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미국 휘발유값은 19일 기준 갤런당 3.84달러까지 치솟아 2008년 7월 최고치인 4.11달러에 육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