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MH17) 추락은 우크라이나 분쟁지역 한가운데서 벌어진 격추사건인 만큼 사건의 진상규명과 배상 및 사후처리 과정에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사건조사 결과에 따른 책임자 처벌 문제 등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국가, 친러시아 반군과 러시아가 모두 얽힌 동부지역 분쟁의 새로운 중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외신에 따르면 국제사회는 세계 각국이 참여하는 진상조사단을 꾸려 즉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8일 오전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함께 보고서를 검토 중이며 빠짐없고 투명한 국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공동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의 책임자가 누군지 빨리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및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로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된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에게도 전화를 걸어 "신속하고 정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국제 조사단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백악관 측은 "오바마 대통령과 뤼터 총리는 국제 조사단이 현장 증거물을 회수하기 위해 사건현장에 지체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국제 민간항공 조약에 따르면 항공사고 발생시 조사책임은 사고가 발생한 국가에 있다. 항공기 등록국가도 조사를 실시할 책임을 진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현재 조사팀을 꾸려 여객기 추락현장에 파견한 상태다. 나집 총리는 "구조팀과 의료팀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했으며 구체적인 사항을 포로셴코 대통령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ICAO와 네덜란드·말레이시아가 참여하는 사고 조사위원회를 꾸릴 것을 제안했다.
이런 가운데 반군 지도자는 사고경위를 규명할 유력한 단서인 블랙박스를 회수해 러시아로 보냈다고 밝혔다. 반군이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안드레이 푸르긴 제1부총리는 "러시아 연방항공위원회(IAC)에 회수한 MH17의 블랙박스를 보내 내용분석을 의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동부 일대를 장악한 친러 반군이 국제 조사단의 진입과 증거 수집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비상사태부는 18일 오전7시(현지시각)까지 "시신 121구를 수습했으며 95명의 구조대원과 18대의 구조장비를 사고현장에 동원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이번 사고와 유사한 전례는 지난 1988년 7월3일 이란항공 소속 655편이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미 해군 함정 빈센스호의 미사일 공격으로 탑승객 290명이 전원 숨졌던 경우가 있다. 미국 정부는 당시 이란과 합의를 통해 유가족에 6,180만달러의 배상급을 지급하고 이란 정부에는 격추된 에어버스 A300 기체에 대한 배상금 4,000만달러를 지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