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 지어 병든 노부모 모시고 고향서 살겠다더니..."
지난 15일 300㎜가 넘는 집중 폭우로 갑자기 무너져 내린 흙더미에 매몰돼 숨진 강원도 인제군 남면 남전리 심덕흠(89)씨와 부인 조경난(88)씨, 맏아들 영운(66)씨 등 일가족 3명의 시신이 안치된 인제장례식장.
고향 집을 집어삼킨 수마로 졸지에 노부모와 큰형님을 잃고 줄초상을 감내하게 된 둘째 아들 영홍(60)씨는 불과 몇 초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참담한 현실에 말조차 잃었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 등 심씨 일가족 3명이 산사태 매몰 사고가 난 것은 지난 15일 낮 12시.
이날 맏아들 영운씨는 고향 집 안방에서 쉬고 있었고 둘째 아들 영홍씨는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가 있던 사랑방에서 노부모의 자리를 살핀 뒤 폭우로 불어난 남전천 강물 수위를 살피기 위해 집 마당을 나섰다.
그 순간 영홍씨는 '쉭~'하는 바람 소리에 이어 '꽈~광'하는 굉음과 함께 고향 집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을 목격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을 애타게 불러봤지만 소용 없었다.
불과 10여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지만 미처 손써 볼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영홍씨는 "집 앞 하천물이 크게 불어나 걱정은 있었지만 설마 국도 맞은편 흙더미가 무너져 집까지 덮쳐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홀로 고생하는 형님을 돕기 위해 서울서 온 우리 부부만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빠져나왔다"며 끝내 목놓아 통곡했다.
숨진 영운씨는 올해 초 직장에 다니는 부인 등 가족을 서울에 남겨두고 고향에 홀로 내려왔다. 이후 줄곧 병든 노부모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극진히 보살핌으로 마을 내에서도 소문난 효자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더욱이 영운씨는 노부모가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한 달 전부터는 고향 집에서 10여 분 떨어진 남전약수터 인근에 새 집을 짓고 있었다.
둘째 아들 영홍씨는 "최근 부모님 모시고 살 새 집을 짓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며 "새집이 거의 다 완성됐는데..."라며 끝내 말을 잇지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