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화콘텐츠산업 규모가 1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지만 '허수'도 적지 않다. 외국의 것을 그냥 가져다 모양만 바꾸며 또 이를 의식 없이 소비하고 때로는 재가공해 수출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핵심기술 없이 조립생산에만 그쳤던 과거 우리 제조업의 모습과 다름 아니다. 지난해 판매된 10대 베스트셀러 가운데 1위(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와 2위(미 비포 유)를 포함한 5개가 번역서다. 박호상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임연구원은 "출판시장이 불황이라는 핑계로 국내 신인 저자를 발굴하는 기획형 출판보다는 시장성이 보장된 베스트셀러 외국 서적을 수입해 번역하는 안정형 출판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최근 인기상품으로 뮤지컬이 뜨고 있지만 지난해 흥행순위 10대 뮤지컬 가운데 '그날들'을 제외한 9개가 라이선스이거나 내한공연이었다. 캐릭터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지난해 극장 개봉작 97편 가운데 국내 작품은 9개에 불과했다. 우리 아이들이 '미키마우스'나 '엘사' 인형을 갖고 노는 이유다.
◇스토리와 융복합이 미래 콘텐츠산업 좌우=지난해 국내 콘텐츠산업의 매출 규모는 94조3,000억원이다. 수치는 매년 늘고 있지만 실제 외국산 제품을 가져다 재가공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덩달아 콘텐츠 소비가 늘어나는 데 불과할 수도 있다.
콘텐츠산업 100조원 시대를 앞두고 기본으로 돌아가서 창조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내실을 다지고 결국은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겨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배타적 공세가 아닌 스며드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업계에서 필요성을 주장하는 첫째는 스토리(이야기)다. 모두가 공감하는 스토리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경우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있었지만 결국은 보편적인 사랑이라는 스토리가 핵심이었다.
대비되는 것이 애니메이션 '넛잡:땅콩도둑들'이다. 우리의 3D 기술로 호평을 받으면서 북미 극장 매출이 6,500만달러에 달하는 대히트를 기록했지만 국내에서는 관객 수 48만명에 그치는 등 미진했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영화를 본 사람은 대부분 이해하겠지만 미국적인 스토리 구성이 국내에서는 호감을 얻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문화산업에도 융복합기술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문화 자체로도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콘텐츠도 디지털과 융복합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해 지난해 12월 문을 연 서울 삼성동의 홀로그램극장 'SM타운 코엑스 아티움'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면 반드시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투자를 늘리자…관건은 선택과 집중=투자를 더욱 늘리되 적재적소에 이뤄져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화콘텐츠라고 할 때 이는 출판·만화·음악·게임·영화·애니메이션·방송·광고·캐릭터·지식정보·콘텐츠솔루션 등을 모두 포괄한다. 그 자체로 대규모 분야이면서 또 최근 정보기술(IT)과 접목하는 융합 분야가 늘어나면서 투자비도 더욱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콘텐츠산업 매출은 94조3,000억원. 이는 국내 관광시장(23조6,000억원)과 스포츠산업(40조8,000억원)을 더한 것보다 많다.
이에 대해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올해 한국콘텐츠진흥원 예산은 2,111억원으로 이 돈으로 문화콘텐츠 전 분야 105개 단위별 사업에 투자를 한다"며 "자동차회사가 신차 하나를 개발할 때 4,000억원가량이 드는데 그렇게 보면 많은 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문화기술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올해 557억원을 투입해서 디지털 적용 과제 등 20개의 신규과제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공개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김종민 한국콘텐츠공제조합 이사장은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은 '4×10' 구조"라며 "약 10만개의 관련 기업이 있다고 하지만 이들의 95% 내외가 자본금 10억원 이하고 종업원은 10인 이하며 연매출 10억원 이하일 정도로 지극히 영세하고 열악하다"고 평가했다.
◇꼼꼼한 제도적 보완 뒤따라야=투자 규모 확대와 함께 제도 개선도 긴급히 이뤄져야 한다. 콘텐츠산업의 뿌리인 스토리(이야기)를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2년 전부터 추진된 '이야기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지난 3월1일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됐다. 이 법률은 '이야기의 공정한 창작환경'과 '이야기산업의 유통 활성화 기반 조성'을 통해 이야기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부가가치 창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정부와 업계에서는 콘텐츠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제도적인 미비점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뮤지컬은 최근 번창하는 한류 문화산업이지만 현행법상 순수예술인 연극에 포함돼 있다. 이러다 보니 콘텐츠산업으로 인식이 안 돼 정부의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연법 제2조 '공연'의 정의 조항은 '음악·무용·연극·연예·국악·곡예 등 예술적 관람물을 실연(實演)에 의해 공중(公衆)에게 관람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돼 있다.
정부는 '문화창조융합벨트'를 구축하고 오는 2017년까지는 융복합 문화콘텐츠의 기획→제작→구현→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는 장기계획을 지난달 밝혔다. 민간기업들의 투자와 함께 꼼꼼한 시스템 보완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