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지주 경영후계 구도 ‘흔들’

라응찬ㆍ이백순-신상훈 갈등이 핵심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2일 비리혐의로 검찰에 전격 고발되면서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신상훈 사장→이백순 신한은행장’으로 이어지는 신한금융그룹의 경영후계 구도가 흔들리게 됐다. 이런 가운데 라 회장은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초유의 경영공백 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신한지주는 조만간 신 사장을 해임하고 후임 인선에 착수해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마땅한 후임 후보를 찾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백순 행장이 내사 주도한 듯=신한은행이 전임 행장이던 신 사장을 이례적으로 고발한 것은 은행 안팎에서 신 사장의 배임 및 비리혐의에 대한 제보와 소문이 이어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신 사장이 신한은행장으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피상적으로 비리 혐의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외부에서 신 사장에 대한 각종 민원이 접수됐던 것으로 안다”며 “현 은행 경영진이 이를 인지하고도 진상을 파악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조사에 착수했고 상당 부분 혐의를 확인해 검찰에 고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사장에 대한 신한은행의 내사는 이 행장이 은밀히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은행들은 업무와 관련한 임직원의 배임이나 횡령 등을 사전ㆍ사후적으로 걸러내기 위해 검사부를 두고 있는데 서울경제신문 취재 결과 신한은행 검사부는 신 사장의 내사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관련 각종 법률 문제를 맡고 있는 부서인 준법지원부도 신 사장 관련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안이 워낙 민감한 만큼 이 행장이 별도의 비선을 통해 진상을 파악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라응찬ㆍ이백순-신상훈 경영권 갈등=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신한금융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경영진 간 갈등과정에서 빚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라 회장은 과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가야C.C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50억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차명계좌와 관련해 금융실명제법 위반의 논란에 서 있는데 신 사장이 이런 실명제 위반 혐의가 불거진 과정에 일부 연관돼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한금융그룹은 모태가 영남권임에도 불구하고 호남권 인사인 신 사장을 최고경영자(CEO)의 반열로 올린 것이 라 회장인 만큼 라 회장이나 신 사장이 서로 대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신 사장이 신한은행 임원 시절 이른바 ‘4룡’으로 불리던 쟁쟁한 임원들이 있었는데 은행 내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신 사장을 발탁한 것이 라 회장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오히려 신 사장이 기대 이상으로 승승장구하면서 그에게 밀려난 일부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반 신상훈 움직임이 많았다”며 “신 사장과 라 회장 간 불화설도 반(反) 신상훈 라인 중 일부를 통해 퍼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혐의내용 뭔가=신한은행이 주장하는 신 사장의 혐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2006년 신한은행장 재직 당시 친인척이 관계된 놀이공원인 ‘파주 금강산랜드‘의 건설사업비 명목으로 950억원을 대출해주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배임 혐의다. 이후 금강산랜드는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어 워크아웃 기업으로 전락했는데 이로 인해 신한은행이 715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또 다른 혐의는 신 사장이 경영컨설팅과 관련한 자문료를 실제보다 부풀려 15억여원 가량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신 사장은 이 같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2일 신한은행이 전임 은행장인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 등을 고소한 사건을 금명간 서울중앙지검 주무 부서에 배당해 본격 수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에 신 사장에 대한 고소장이 2일 접수됐으며 곧 고소장 내용을 검토한 후 수사 주무 부서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안이 중대하기는 하지만 형식상 일반고소 사건임을 감안할 때 특수부나 금융조세조사부 등에 배당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앙지검은 배당 부서가 정해지면 신한은행 측 관계자들을 소환해 고소인 조사를 한 뒤 신 사장 등 피고소인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피고소인은 신 사장과 전임 부행장 2명 등 모두 7명이다. ◇신한지주 사장, 후임 안갯속=신한지주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이사회를 열고 신 사장의 대표이사직을 박탈하기로 했다. 대표이사 박탈과 별도로 신 사장의 이사직은 주주총회를 통해 결정되는 데 이 역시 이사회가 열린 후에야 일정이 잡힐 수 있다. 금융권은 신한지주의 이사회 개최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신한지주는 4명의 사내 이사와 8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는데 사외이사 중 재일교포와 신한지주의 제휴사인 BNP파리바 측 임원이 포함돼 있어 이들과의 일정을 단기간에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사외이사 중 상당수도 2일 신한지주의 공식 발표가 있은 지 수시간이 지난 후에도 신 사장의 해임과 관련한 이사회 소집 등의 통보를 전혀 받지 못했다. 이사회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후임 사장을 물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주 내 선임급 부사장들은 지난달 말 재연임됐거나 물러난 상태다. 그룹사 CEO 중에서는 가장 선임인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의 경우 이달 말 임기가 만료되기는 하지만 이미 지난달 말 신한지주 이사회에서 임기 연임이 내정됐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전임 경영진을 다시 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신 사장에게 지주 CEO직을 물려주고 명예롭게 은퇴했던 이인호 전 사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후임 인선구도는 안갯속이다. 금융권은 이번 사태가 2005년 신한ㆍ조흥은행간 통합문제를 놓고 라 회장과 갈등을 빚다가 해임 당한 최영휘 전 신한지주 사장의 사례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