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 흐름이 심각하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하락해 9개월 만에 최저로 내려앉으며 0%대에 바짝 다가섰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물가안정 목표 2.5∼3.5%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낮아 혹여 디플레이션 공포가 현실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물가 상승률 저하는 국제유가 하락과 농산물 공급 확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석유류·농산물을 제외한 11월 근원물가 상승률도 1.6%에 지나지 않다는 점에서 과연 합당한 진단인지 의문이다. 그뿐 아니라 전체 상품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0.2%에 그쳤고 공업제품 물가는 0.1% 뒷걸음쳤다. 저물가 사태가 특정 요인 때문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친 불경기에 기인한 것임을 방증하는 수치들은 이 밖에도 많다.
이런 마당에 정부는 1%대를 맴도는 물가가 담뱃값 2,000원 인상에 힘입어 내년에는 2%대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황당한 예측까지 내놓았다. "(담뱃값 인상에 힘입은) 0.62%포인트 상승효과는 물가안정 목표(2.3~2.4%) 안에서 흡수 가능할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해괴한 논리에 기막힐 뿐이다. 담뱃값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은 실물경기 회복과 무관한 수치상의 변화일 뿐이라는 점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어찌 이렇게 뚱딴지 같은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세금인상이 저물가 해결책이라니 국민을 '호갱(어수룩한 고객)'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정부가 이럴 수는 없다.
41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과 두 차례의 금리인하에도 저물가 상황은 꿈쩍하지 않는다. 온갖 처방에도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계의 소비심리와 기업의 경기심리는 물가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물가 예측과 진단은 물론 처방마저 길을 헤매는 정부가 군색한 궤변으로 국민을 기만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가계소득 확대와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한 소비진작이 시급하다. 그것이 제대로 된 물가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