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0년내 우수한 노동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민소득 2만달러`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재벌ㆍ노조 개혁이 선결돼야 합니다. 북한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갭`(차이)도 서둘러 복구해야 합니다.”
미국 웰스파고 은행의 손성원 부행장은 “한국경제가 감세 및 재정정책, 수출호조에 힘입어 내년 4.5%의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손 부행장은 “최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가 내년 경제성장률에 추가적인 상승요인으로 작용, 5%이상의 성장률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제3회 `세계상공회의소 총회`에 특별초청돼 강연을 마친뒤 기자를 만나 최근 미국 월가에서 바라보는 한국과 한국경제의 실상을 소상하게 전했다.
손성원 부행장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 의장의 후임으로까지 거명되고 있는 월가(街)의 정상급 애널리스트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경제분석가의 눈을 통해 글로벌자본이 보는 한국경제를 조망해 본다.
-한국은 지금 내부적으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반면 국제 경제 판도상 아시아에 대한 외부의 기대감도 상당히 높아 `우려 요인과 낙관 요인`이 팽팽한 상황입니다. 현지 금융계에선 한국경제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한국경제는 과거와 같은 고성장기는 끝났습니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견인해 왔던 제조업도 고용창출력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세계적인 경기불황의 영향으로 한국경제도 성장률이 2.4%에 머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경제의 회복에 따른 수출증가로 한국경제는 다시 상승탄력을 되찾아 내년에는 4.5%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입니다. 아울러 최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는 단기적으로 경제에 충격을 주겠지만, 피해복구를 재정ㆍ보험ㆍ개인 지출 확대에 힘입어 내년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비근한 예로 미국도 1969년 허리케인 `앤드루` 플로리다를 쓸고 간 이듬해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지요.
-글로벌 자본은 한국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밖에서 판단하는 한국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한국 경제성장 잠재력을 평점으로 매기면 `A`입니다. 우수한 기술력과 노동자들의 근면성 등을 글로벌 자본은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첨단 IT기술이 발전된 것도 한국경제가 지닌 장점입니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이기는 것을 보세요. 세계가 감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경제가 이 장점을 잘 활용하면 10년내 국민소득 2만달러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다만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북한ㆍ재벌ㆍ노조 등 3대과제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합니다.
-북한문제를 말씀하셨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남과 북이 분단돼 있는 한 근원적인 문제해결은 어려워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북한문제는 한국 경제의 큰 멍에입니다. 하지만 뚜렷한 해법을 제시할 수 없군요. 다만 미국인들은 한-미 공조의 균열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대북경협은 무조건 지원(한국)-조건부 지원(미국)으로, 2사단 이전배치는 당연(미국)-신중히 처리(한국) 등으로 엇갈려 있어요. 이 같은 `갭`(차이)를 어떻게 좁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양측의 불일치가 한국으로의 직ㆍ간접투자를 억제하고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한국은 지금 중국의 추격과 아울러 선진국의 기술장벽에 포위돼 있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넛크래커`(호두까기)에 끼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신세나 다름없다는 걱정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한국은 `넛크래커`에 빠져 있습니다. 특히 요즘 중국의 기술 성장은 무서워요. 중국은 더 이상 저임금-저기술 경제가 아닙니다. 일부 산업의 경우는 일본의 기술력을 능가할 정도예요. 미국 등 선진국을 추격하는 것 역시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한국이 넛크래커를 빠져 나오는 길은 고부가제품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 뿐입니다. 삼성전자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삼성이 만드는 휴대폰은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보험ㆍ은행 등 금융서비스산업 육성에도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글로벌 자본들은 한국의 금융 및 서비스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현대 비자금 및 SK분식회계 사태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을 가감없이 밝혀주십시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이 SK분식회계 처리에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외국인들 대부분은 재벌의 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보다 빠른 조치를 바라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경제에 상처를 준다고 해도, 가능한 한 문제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 옳습니다. 올해는 SK를 처리하고, 내년에는 현대문제를 천천히 해결하자는 식으로 하다가는 한국경제는 더 깊은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합니다. 기업의 투명성 확보는 한국경제의 절대절명의 과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외자유치의 확대는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재계(특히 전경련)는 참여정부 들어서 지속적으로 개혁정책의 절충 또는 포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재계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재계가 취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재벌은 재벌 자신의 이익에 매달리기 보다는 한국 경제에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투명성 및 기업지배구조 개선만이 한국을 경쟁력 있는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우와 SK의 경우에서 보듯, 과거 재벌은 국가의 자원을 상당부분 침해해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재벌 개혁은 한국경제는 물론 재벌에게도 유익합니다. `윈-윈게임`인 셈이죠.
-많은 외국기업인들이 한국의 노조를 `전투적`이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인식하고 `노사관계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노동개혁에 힘을 쏟고 있는데요.
▲노동조합은 시장경제에 꼭 필요한 조직입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비쳐진 한국 노조는 지나치게 `전투적`이라는게 문제예요. GM의 대우차 인수 때를 보세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노조문제였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기업에 선뜻 투자할 외국인은 별로 없을 겁니다. 특히 요즘 미국 기업인들은 한국 정부가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의식해 노조개혁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쩍 넘어가는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초기 일부 미국인들이 한국의 새 정부에 우려의 시선을 던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7개월여가 지난 지금 미국인들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미국에서 노무현 정권의 `반미성향`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해소됐어요. 노 대통령은 외교 경험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미국방문에서 유연한 모습으로 미국인들의 `오해`를 완전히 불식시켰죠. 오히려 지금 미국 기업인들의 걱정은 지지부진한 재벌ㆍ노동 개혁에 쏠려 있습니다.
-최근 미국은 한국에 이라크로의 추가파병을 공식요구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파병반대 여론과 반미의식이 다시 고조되는 듯합니다.
▲(한국 국민이)파병을 반대하는 것은 좋습니다. 미국정책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국인들은 불쾌해 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조기를 불태우고, 미군부대에까지 들어가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미국)는 한국을 좋아하는데, 한국은 왜 우리를 싫어하느냐”는 의구심이죠. 어쨌든 이로 인해 한-미 관계가 벌어지는 일은 없기 바랍니다.
발자취27세에 美대형銀 부총재올라 "금리인하" 그린스펀과 격론도
1962년 17세의 나이로 단 돈 100달러를 들고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향한 당찬 한국소년이 있었다. 해외여행이라곤 엄두도 낼 수 없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소년은 `세계 경제계의 거물`을 꿈꾸며 불철주야 학업에 전념했다. 그 집념의 결과로 소년은 도미(渡美) 3년만에 대학을 졸업했고, 다시 2년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뒤 26세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역을 맡고, 27세에 미국 대형은행의 부총재에 올랐다. 소년은 도미 10년만에 꿈을 이룬 것이다.
미국 월가(街)에서 `한국인의 신화`로 불리는 손성원 웰스파고은행 부행장 겸 수석이코노미스트가 그때의 그 소년이다.
손성원의 신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은 미국 경제계에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일화.
1992년 미 은행가협회장이었던 한국 출신의 손성원 박사는 미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에서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과 격론을 벌였다. 손 성원 박사는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금리인하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린스펀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우려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격론 끝에 이날 12명의 FRB 이사들은 손 박사의 주장을 지지했고 미 정부는 금리인하 조치를 단행했다. 그 결과 걸프전 이후 극심한 침체에 빠져있던 미국경제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뒤이어 남미와 유럽경제도 되살아났다.
이 때부터 미국인들은 금리인하 조치의 숨은 주인공 한국인 손성원 박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계는 손 부행장과 앨런 그린스펀의 이 격론을 90년대 미국경제의 흐름을 뒤바꾼 대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후 손 부행장은 월가(街)의 `코리안 파워`를 이끌며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후임으로까지 거명되는 등 미국경제계의 `큰 별`로 떠올랐다.
이 같은 유명세 덕분에 그는 미국 주요 경제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유력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인물로 손 부행장을 선정하기도 했다.
손 부행장은 1962년 광주일고 졸업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3년 만에 최우등으로 대학을 마친 그는 미시간 웨인대를 거쳐 피츠버그대에서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발탁돼 매주 대통령에게 경제동향 분석을 보고하는 일을 하다가 27세의 나이에 지금의 웰스파고 은행과 합병된 노스웨스트 은행 부총재에 오르면서 월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웰스파고은행에서 경제동향은 물론 인수합병(M&A)과 자산관리 등 주요 분야 의사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미국에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1962년 광주일고 졸업
▲1965년 플로리다 주립대 졸업
▲1967년 피츠버그대 박사학위 취득
▲1967년 닉슨 대통령 경제자문 이코노미스트
▲1968년 노스웨스트은행 부총재
▲1992년 미국 은행가협회장
<퀘벡(캐나다)=문성진기자 hns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