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 정보화시대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탈공업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정보화와 동의어 비슷하게 유행하던 탈공업화에 대해 `제로섬 사회`의 저자 레스터 서로 교수는 `서비스 산업의 고용이 제조업의 고용을 크게 웃돌고 때묻는 중공업 대신에 깨끗하고 잘 정돈된 오피스가 경제를 주력을 담당하게 되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러니까 힘들고 고된 중화학공업 대신에 깨끗한 사무실에서 이뤄지는 업종이 경제의 중심이자 성장의 엔진역활을 담당하는 사회가 탈공업화시대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탈공업화는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높은 소득을 올린다는 점에서 공업화보다는 한단계 높은 발전단계인 셈이다.
실제 미국은 70년대이후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제조업은 사양길에 들어서고 보험 도소매 의료 기업서비스와 부문이 고용의 대부분을 창출하면서 서비스산업이 미국경제의 주력으로 올라섰다. 서비스업이 전체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이른바 서비스중심 경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탈공업화로 인해 잃은 것도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고된 제조업의 공장대신에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평균임금은 제조업을 크게 밑돌고 생산성도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규모 무역적자국으로 전락한 것도 탈공업화이후의 일이다. 제조업이 천대받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 결국 미국은 경쟁력을 상실한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슈퍼 301조와 저달러정책과 같은 보호주의 칼을 빼들게 된다. `제조업은 영원하다`의 저자 미키노 노부루는 `악마의 선택`이라고 비난했다.
기축통화라는 무형자산과 방대한 자국시장을 무기로 악마의 선택을 할수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탈공업화 예찬론이 먹혀들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수출로 먹고 사는 작은 나라들은 사정이 다르다.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장기간 정체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탈공업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3년동안 국내제조업의 일자리가 88만개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력이 없어 문을 닫거나 중국등지로 공장을 이전한 결과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자동차 철강 조선 전자등 주력산업들의 경우도 길어야 5-10년쯤이면 중국의 추격에 추월 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탈공업화 차원이 아니라 제조업 공동화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훨씬 정확한 진단인 듯 하다.
제조업이 공동화되더라도 일자리만 충분히 만들어진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제조업이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고 있지만 이렇다할 대체산업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외견상 경제전체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지고는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깨끗한 사무실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비생산적인 업종만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음식 숙박등 생산에 대한 기여도가 낮은 비생산적 서비스업이 경제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영국등 선진국의 경우 14-15%전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1%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뮬류 금융등 기업지원형 생산적 서비스가 아니라 먹고 마시는 비생산적 서비스가 커지는 것을 놓고 탈공업화니 경제의 소프트화니 떠드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산업을 키우지도 못하면서 제조업을 내쫒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다. 제조업 공동화는 일자리 상실뿐 아니라 대규모 무역적자가 불가피해 진다. 이미 수십만명에 달하는 청년실업문제도 제조업 공동화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 독일등이 미국처럼 대규모 무역적자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 것은 제조업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악마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면서 제조업 공동화를 탈공업화 환상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제조업 공동화의 함정을 직시해야 한다.
<논설위원(경영博) sr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