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개인과 가계가 은행에서 빌린 돈이 무려 13조원이나 늘어났고 가계대출 잔액이 사상 처음 60조원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빚을 겁내지 않는 우리의 습벽을 잘 대변해준다.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소득이 줄어 모자라는 생계자금을 빌릴 수는 있다. 특히 올해 가계대출이 급증한 이유에는 고금리로 빌린 제2금융권의 자금을 은행대출로 전환했거나 기존의 고금리 대출을 상환한데 따른 반작용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대출이 투자와 생산자금으로 쓰이는 데 반해 가계대출은 대부분 소비확대로 이어지기 쉬워 거품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같은 징후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소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의 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소비는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는 과소비로 치달아 인플레를 유발하고 구조조정 의지를 희석시킬 위험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인플레에 대한 경고가 발령된 상태이고 경상수지 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점은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이 증시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계대출의 30% 정도가 주식에 투자되고 있다고 추정한다. 담배인삼공사 공모주 청약에 12조원이 동원됐고 이중 1조원 정도가 은행 가계대출로 조달됐다는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은행의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증시의 주가가 폭락했을 경우 가계도 부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 사회혼란과 심리적 동요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 금리가 오르면 가계는 금융비용 부담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저축률이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재원의 감축도 적지않이 우려되므로 회복기의 경제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가계대출의 급증에는 은행의 대출 세일 등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다. 은행은 자산관리를 손쉽게 안전운행하려고만 할 일이 아니다. 그로 인해 경제에 나쁜 씨앗을 뿌린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빚은 무서운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대출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