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과당경쟁이 외환위기, 카드부실등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됐고, 최근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경쟁에 대한 경고가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은행이 경기를 살리는 원동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은행장의 입에서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10일 월례조회에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영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은행이 경기회복세의 기폭제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행장의 발언은 은행이 그동안 카드ㆍ부동산 등에 불이 붙은 뒤에야 영업력을 집중하거나 리스크 관리에만 치중해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은행간 차별화 된 전략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물론 특정 시장에서 출혈경쟁을 벌이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현 구도를 바꿀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황 행장은 “그간 은행들은 돈이 필요한 기업에 늦게 지원하는 ‘경기후행적’ 모습을 보여왔는데, 하강 우려가 있는 현 경기상황에서 한 부문의 미래를 내다보고 자금공급에 나서는 ‘경기선행적’ 자세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행장의 이 말은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지속적을 축소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일부 은행이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을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다. 올들어 14개 중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을 준수한 은행은 2개에 불과하며, 6개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은 3월말 현재 29.9%로 지난해말 48.4%에 비해 18.5%포인트나 떨어졌다. 6개 지방은행은 최근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이 60%로 시중은행(45%)이나 외국은행 지점(35%)보다 지나치게 높다”며 이를 시중은행 수준으로 낮춰주도록 한국은행에 건의하기도 했다. 은행들이 ‘경기선행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대출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은행들이 개별기업에 대해 일반적인 경제 진단과는 독립된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 기술평가 인증제도 등 심사시스템의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 하나은행의 한 지점장은 “지점장에게 부여된 대출 전결은 없어졌고 본사에서 규정한 자격요건이 갖춰줬을 때만 대출이 가능해 기업의 미래가치를 염두에 두고 대출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기업의 기술력과 미래가치를 평가하는 노하우와 시스템은 은행의 생존 경쟁력을 직결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은행 스스로가 신용보다는 기술력으로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차별화 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은행간 전쟁에서 리스크는 줄이면서 미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은행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