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독립운동가 사랑한 日 여인

김별아 역사소설 '열애' 출간



1922년 도쿄의 어느 눈 내리던 겨울.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었던 가네코 후미코는 ‘식민지의 남자’ 박열과 조그마한 오뎅집에서 처음 만난다. 시인이었던 박열의 시에 감명을 받았던 그녀는 첫 눈에 그에게 빠져든다. 가네코는 그녀의 마음을 차지해 버린 남자에게 “나는 내가 찾고 있던 것을 당신에게서 발견했어요. 나는 당신과 함께 일하길 원해요”라며 서투른 고백을 한다. 당돌한 고백에 박열은 다소곳한 전형적인 일본 여인과 다른 후미코에게 깊은 인상을 받는다. 생의 마지막까지 사회주의 운동을 함께하는 동지이자 뜨거운 가슴을 나눈 연인으로 남았던 두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시작된다. ‘미실’ ‘논개’ ‘김구’ 등 역사적인 인물을 소설로 되살려내 온 소설가 김별아(40ㆍ사진)가 1년 만에 신작 ‘열애’(문학의문학 펴냄)로 돌아왔다. 작품의 기둥 줄거리는 ‘일본 천황가 폭탄 투척사건’의 용의자였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과 그를 사랑한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2006년 가네코 후미코가 쓴 옥중 일기의 영문판을 읽고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후미코는 인생 자체가 무적자이며 근대 일본에서 이탈된 사람으로 식민지 출신의 남성을 사랑하면서 자기 존재를 재확인하려 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시절 허무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박열과 불행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사회주의자가 된 후미코는 자기의 운명을 끝까지 사랑한 사람들”이라며 “가장 뜨겁고 커다란 사랑은 운명에 대한 사랑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천황 폭탄 투척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후미코가 자신의 결백을 밝히지 않고 옥에 스스로를 가둔 것도 박열과 끝까지 가겠다는 지극한 사랑 탓이었다고 작가는 해석했다. 그는 “자기부정을 하는 많은 일본 지식인들과 달리 가네코는 오로지 자기에게 충실하기 위해 끝까지 박열을 사랑했다”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식민지 조선 청년과 일본 여인간의 사랑이라고 한계를 짓기에는 무리”라고 말했다.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는 데 몰두하는 작가는 “여자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재해석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역사 소설의 계보를 이룬 남성 작가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쓸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며 당분간 역사소설에만 주력할 뜻을 내비쳤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