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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경기 회복의 불씨는 살렸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서민 경제 전반에 확산됐다고 보지 않습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을 지휘했던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밝힌 소회다. 정부가 나름 민생을 위한 정책 노력을 폈지만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아쉬워한 대목이다. 이는 최경환 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을 사령탑으로 하는 정부 2기 경제팀이 당면한 숙제다.
실제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시장과 가계로부터 아직 충분한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300명의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중소기업인 중 약 절반(48.7%)이 "박근혜 정부가 정책 수립시 중소기업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1기 경제팀은 수시로 중소기업 지원을 약속해왔지만 정작 기업인들의 눈높이에는 못 미쳤다는 뜻이다. 정부 정책의 체감도가 낮다는 지적은 중소기업인들만의 비판이 아니다. 가계 부문은 정부의 수차례 종합대책 발표에도 고용불안, 하우스푸어 및 렌트푸어 문제 등이 여전하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소상공인들도 내수 활성화 정책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성토해왔다.
체감도 낮은 정책은 약효를 내기 어렵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나 경제심리지수(ESI) 등 체감경기를 반영하는 지표들이 현 정부 들어서도 좀처럼 활짝 개지 않는 상황은 이를 방증한다. 흔히 경제는 심리라고 하는데 정책 체감도가 떨어지니 민간 부문의 위축된 경제 심리가 살아나지 못한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경제정책을 국민으로부터 공감 받는 성공 프로젝트로 안착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관료 특유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료가 책상머리에 앉아 과거에 썼던 정책을 재탕·삼탕으로 우려먹거나 연구용역, 업계 제언 등을 일괄 제출 받아 베끼는 식으로 탁상공론 정책을 내놓아서는 대책의 실효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경제단체 간부는 "공무원이 평상시에 틈틈이 현장을 열심히 둘러보고 사람들도 만나서 정책 개발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드물다"고 꼬집었다. 기껏해야 실무관료가 사무실에 앉아 업종별 단체에 전화를 걸어 '무슨 무슨 대책을 만들려고 하니 관련 업체 민원사항 모아 (팩스 등으로) 보내달라'는 식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다른 단체 관계자는 "고위공무원이 산업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면서 업계 종사자들과의 간담회를 여는 일도 많지만 대체로 무슨 건의를 할지 사전에 다 각본을 짜놓고 하는 경우가 많아 기업인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며 "결국 자기(관료)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다가 가는 쇼에 불과했다"로 털어놓았다.
민간의 이런 제언들은 한 마디로 '현장에서 발로 뛰며 정책 만들라'로 압축된다. 지극히 원론적인 지적이지만 그대로 실행하려면 정책개발 시스템의 전면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이는 △현장정책 마련을 위한 전문 경제관료 육성 △요식적 공청회 시스템 개혁 △상시적 정책 애프터서비스(AS) 체계 구축 △정책 개발 시간 잡아먹는 불필요한 의전ㆍ보고업무 축소ㆍ폐지 등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 중 전문 경제관료 육성이 특히 중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간부는 "우리 경제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제대로 된 정책 하나를 만들려면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풀 전문지식과 이해집단 간 갈등을 풀 정무적 감각 등을 고루 갖춘 베테랑이 필요하다"며 "1년 만에 보직을 바꾸는 지금의 순환보직제 인사 방식으로는 그런 베테랑을 기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불필요한 의전ㆍ보고업무 축소도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다. 기획재정부의 한 실무자는 "현장에서 정책을 개발하라고 하지만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며 높은 분들 의전이나 각종 보고를 위한 서류 작성 등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어 밤 늦도록 일해도 현장 가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상시적 정책 AS 시스템 마련도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과제로 꼽힌다. 매번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종합대책이네 뭐네 하면서 백화점 식으로 우후죽순 정책을 쏟아내지만 발표하고 나면 해당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효과는 있는지 따져보고 공개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실효성 없는 정책 남발이 반복되고 결국 정책 효과의 체감도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이어져왔다는 게 행정학계 전문가들의 오랜 지적이다.
이와 별도로 정책을 긴 호흡으로 짜는 일도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증적이고 단편적인 정책보다는 긴 호흡으로 '성장-분배'의 선순환 고리를 찾아 국가가 성장하면 그 온기가 서민에게도 고루 번지도록 구조개혁을 하는 일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