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차명계좌라도 명의자가 주인이라는 점과 불법적인 목적의 차명거래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내용의 금융실명제법 개정안 처리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실명제법에도 불구하고 차명거래가 광범위하게 행해져온 것을 볼 때 큰 파문이 예상된다. 그러나 불법자금거래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할 것이냐를 놓고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어 여야 합의 과정에서 법안 처리가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명계좌라도 명의자가 주인'…큰 파문 예상=금융실명제법에도 불구하고 차명거래는 그동안 금융계, 재계는 물론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광범위하게 행해져왔다. 따라서 '차명계좌라도 명의자가 주인'이라는 내용으로 법 개정이 확정되면 큰 파문이 예상된다. 차명계좌라도 원칙적으로 명의자가 주인이라면 차명거래에 지금보다 훨씬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차명거래가 문제됐던 삼성그룹·CJ그룹 등의 사례를 볼 때 재계의 각종 차명거래 관행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실명화하는 과정에서 실소유주가 누구냐를 둘러싸고 각종 소송이 잇따를 수도 있다.
◇불법자금거래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우선 개정안 처리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관련 논의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정무위 법안소위에 올라오면 부작용 등을 감안해 신중하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법안소위에서 불법거래 기준, 처벌 수위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심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안 심의 과정에서 차명계좌에 의한 불법거래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민병두·안철수·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당시 금융당국은 관행적으로 허용됐던 가족 명의 계좌, 예금보호(5,000만원 이하)를 위한 분산 예금, 친목회·종친회 자금 운영 목적의 공동 소유 계좌 등 '선의의 차명계좌'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표시해왔다. 또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운용해온 증권·금융사 직원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일단 금융당국의 지적을 수용해 불법적인 거래를 목적으로 개설되는 차명계좌만 규제하는 쪽으로 합의안이 도출됐지만 일부 야당 의원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차명거래를 금지하되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관련 규제를 최소화해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법안을 발의한 여야 의원들이 금융당국과 잠정적으로 합의한 상황이지만 정무위 법안소위 의원 개개인이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 탓에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