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거대한 추상화다"

요셉 슐츠 사진전 '리얼 앤 언리얼'



아무 장식없이 지은 거대한 창고, 덩그렇게 놓여져 있는 원통형의 건물 두개 동, 거대한 담벼락, 독일 통일 후 용도를 잃어버린 채 국경지방에 우두커니 서 있는 초소…. 결정적 순간으로 요약할 수 있는 기존의 사진 미학을 거부하고, 동네 사진관 앞에 걸린 무표정의 증명사진에 익숙한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독일 사진의 차세대 작가 요셉 슐츠(39)의 사진들이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고 있다. 갤러리 뤼미에르에서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리얼 앤 언리얼(Real & Unreal’ (현실 그리고 가상)전이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건축물들의 새로운 세계로 관람객을 이끈다. 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대 사람들이 숨가쁘게 달려온 산업사회의 흔적들이 버려진 공장, 창고, 대량 생산되는 조립식 건축물 들이 원색의 뚜렷한 빛깔로 우리를 맞는다. 동떨어진 곳에 홀로 외로워 보이는 건물들은 언뜻 보기에는 그것들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 시간, 용도 등을 알 수 있는 아무런 힌트도 찾을 수 없다. 마치 꿈 속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진 속 건축물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건물들이다.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건축물 사진을 통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가상인지를 생각해볼 것을 제안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건축물을 찍는 많은 작가들이 있는 그대로의 색상과 크기로 현대 사회의 아이콘으로 재생시켰다면 요셉 슐츠의 사진 속 엄격하고 제한된 건축물의 구조와 색은 흡사 추상주의 회화의 면과 선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통로, 창고시설, 산업 건축물을 촬영한 후 디지털 작업을 이용해 아날로그 사진 속 건축물과 주변 환경만 남기고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 시간이나 장소 등을 알 수 있는 다른 배경과 증거들은 모두 지워버린다. 국경을 찍은 ‘로스트 펑션’(Lost Fuction)시리즈 사진도 마찬가지다.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국경선 위 초소에는 펄럭이는 국기도, 서두르는 여행객도, 총을 맨 군인도 없다. 유럽 연합이후 빠르게 그 기능을 잃어가는 국경초소는 황량한 들판 위에 우두커니 유럽 연합 이후에 우두커니 유령의 모습을 닮아있다. 뒤셀도르프 군스트 아카데미에서 독일 현대사진의 선두주자인 토마스 루프 클래스에서 수학할 때 루프가 수제자로 꼽았던 작가. 2001년 루프와 함께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2001년 유럽건축사진상에 이어 2005년 프랑스 아를 사진축제 등에서 각종 상을 받고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있다. 전시는 2006년 2월5일까지. (02)517-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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