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규제만능에 빠진 금융당국


"대출모집인제도는 철폐하고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는 다 없애버리라고 하죠?"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가 기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카드사 정보유출로 코너에 몰린 금융 당국이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애려고 하는 탓이다. 고금리에 자주 말썽을 피우는 2금융권은 모두 문 닫게 하는 게 낫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업계에서 나온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개별 대출모집인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대부업체의 TV 광고제한도 추진 중이다. 텔레마케팅(TM) 영업제한에 이어 강도 높은 규제가 계속 쏟아지는 셈이다. 나빠진 여론과 청와대 눈치에 금융 당국의 규제정책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다.

하나씩 뜯어보자. 대출모집인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은 과도한 시장개입이다. 은행에 비해 점포와 인력이 부족한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는 이를 보완해줄 곳이 필수다. 불법정보 수집과 이용은 철저히 막아야지만 모집인들은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되고 2금융권 회사들은 수익원이 줄게 된다. 금융생태계가 파괴되는 셈이다.

광고도 그렇다. 대부업 광고를 막겠다는 것은 대부업의 존재가치를 부정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부업이 쪼그라들면 그 피해는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과도한 광고는 문제지만 이미 지상파와 어린이채널에서는 대부업 광고가 안 된다. 이런 식이라면 전금융권의 대출광고를 막아야 한다. 서울시내 주요 버스는 앞문에 SBI저축은행 광고를 달고 달린다. 고금리 대출이 문제라면 이런 것도 막고 네이버나 다음처럼 전국민이 무차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의 검색 및 광고도 차단해야 한다.

정부 서민금융상품인 햇살론이나 미소금융도 포털사이트를 통한 소개를 전면 규제해야 할 것이다. 싼 이자라지만 대출은 대출 아닌가. 은행과 금융지주사의 이미지 광고도 모두 막아야 한다. 같은 논리라면 가계부채의 주범은 은행 아니었나.

불법 개인정보 유출과 유통은 엄벌해야 한다. 그러나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과도한 규제를 가하는 당국은 무책임하다. 금융사가 죽으면 금융위와 금융감독원도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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