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仁模 국제부장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는 아테네의 전설적인 장인 다이달루스와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여자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쿠마이의 아폴로 신전과 셀리노스의 증기 목욕탕 등을 건축한 것으로 전해진 다이달루스는 미노스왕의 명령으로 자기 자신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미궁 라비린토스를 설계했으나 미노스왕의 미움을 사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도리어 라비린토스에 갇히게 된다.
미궁에 갇힌 장인 다이달루스는 한때 왕비 파시파에의 도움으로 탈출을 꾀하였으나 미노스왕이 해변의 모든 배를 치워버려 실패하고 드디어는 밀납으로 깃털 날개를 어깨에 만들어 붙인 뒤 이카루스와 함께 탈출을 기도한다.
다이달루스 부자는 물론 탈출에 성공했으나 하늘을 나는 황홀함에 빠진 소년 이카루스는 아버지 다이달루스의 주의를 잊고 너무 높이 하늘을 날다 밀납이 녹아 이카리오스해에 추락하고 만다.
뉴욕 타임스 최근호는 김우중(金宇中) 대우그룹 회장을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에 비유하며 세계 신흥시장의 잠재력을 낙관한 나머지 지나친 차입 경영과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도모한 게 대우 해체 위기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굳게 믿은 金회장이 「세계 경영」이라는 「밀랍 날개」를 지나치게 맹신한 결과 유동성 위기라는 바다에 추락하고 말았다는 분석인 셈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 최근호도 실제로 金회장이 동유럽을 비롯한 신흥시장 선점전략에 따라 최근 몇년 동안 폴란드와 인도, 우즈베키스탄 등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는 등 해외사업을 너무 많이 벌여 놓았으며 폴란드를 제외한 대우의 4개 해외 자동차 공장 가동률은 지난해 평균 30%를 밑돌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대우의 「밀랍 날개」는 「세계 경영」전략 그 자체라기 보다 투신사가 보유한 22조원에 달하는 대우 채권이라고 보는 게 옳다. 지난 97년 외환위기가 다가왔던 저변에, 종금사들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신흥개도국에서 무분별하게 매입했던 정크본드의 손실이 크게 작용했던 것처럼 대우그룹의 지급불능 이면에는 지난 연말 시중금리의 급락 이후 안이한 수익률 경쟁에 나섰던 투신사들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욱이 대우에 회사채와 CP 인수 등으로 「밀랍 날개」를 달아주었던 다이달루스인 투신사들이 대우 채권의 위험을 알고도 방기, 일시적인 환매 사태까지 유발한 것은 또다른 도덕적 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대우 사태가 지난 26일 증시 사상 최대의 낙폭을 야기할 때까지 당국의 초기 대응도 갈피를 잡지못한 느낌이다. 특히 『대우의 해외부채는 현지법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이헌재(李憲宰)금감위원장의 발언은 『대우를 파산시키면 한국의 국가신인도가 높아져 도리어 한국경제가 짐을 덜게 될 것』이라는 외국의 일방적인 시각 만큼이나 무책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79년 클라이슬러의 도산 위기 때 제너럴 모터스(GM) 등 자동차 관련업계가 지원에 나선 점이나 지난해 가을 헤지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의 파산 위기 때 미국은행들의 구제금융 사례를 보더라도 화근을 키우는 비경제적 행위는 비난 받아야 마땅하나 위기발생시 대응의 포기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여튼 대우 쇼크는 이제 채권단의 손에 넘어갔고 정부의 뒤늦은 감은 있으나 과단성있는 대응 덕에 등락을 거듭하던 증시를 비롯 금융시장의 안정도 서서히 되찾아가는 듯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손실의 배분과 보전이라 할 수 있다. 재정적자의 가중이라는 또다른 짐이 궁극적으로는 국민부담으로 돌아가는게 불가피 하겠지만 이제 당사자인 대우와 정책당국, 그리고 금융기관 등이 얼마만큼의 책임을 느끼고 얼마만큼의 책임을 감내하느냐는 컨센서스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그룹 대우가 피닉스처럼 되살아나지 못하고 비록 해체되더라도 살아남는 「베이비 대우」들의 바른 양육과 장래를 위해 아직도 우리는 진지한 논의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IAKIA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