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외환위기의 발생원인」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외환위기는 단순한 유동성 부족 뿐 아니라 부실·과잉 투자, 기업의 수익성 악화 등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원인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위기경험 국가들의 90년대 경제성장률, 재정적자, 물가상승률 등 각종 지표를 종합해 분석한 결과,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 확률이 15%에 달해 멕시코 13%, 인도네시아 6%, 말레이시아 5%, 태국 9% 등보다 훨씬 높았다고 지적했다.즉 아시아 외환위기의 최후의 희생자였던 한국은 국제투기자본들의 공략에 의해 위환위기를 겪었다기보다는 내부적으로 이미 위기의 씨앗을 키워왔으며 이같은 경제적 취약성이 아시아 외환위기를 통해 폭발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올들어 경제 회복이 본격화되면서 97년 위기를 국제투기자본이동에 따라 갑작스레 닥친 위기라고 평가하는 일부의 안일한 인식에 쐐기를 박는 것이다.
사실 한국은 고도성장의 속도감을 만끽한 만큼 추락의 아찔함도 경험해야 했다.
98년 한해만도 1인당 GNP가 3,484달러가 줄어들어 1만달러시대의 도래는 한순간의 장미빛 꿈이 되어 버렸으며 연간 5%~10%대를 구가하던 경제성장이 마이너스 6%대까지 곤두박질 쳤다.
단순한 거시지표 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30% 가까운 초고금리로 하루에도 100여개이상 기업이 도산했으며 하루 평균 1만명 이상이 일자리에서 쫓겨나 실직자로 거리로 내몰리기까지 했다.
실직과 가계 파산이 이어지면서 하루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생계형 범죄까지 기승을 부리는 등 외환위기는 경제적 문제를 떠나 정치·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위기가 갑작스레 닥쳤던만큼 위기 극복도 극적이었다. 97년말 가용외환보유고가 37억달러로까지 바닥을 치달으면서 국가부도선상까지 갔던 외환사정이 98년초 금융기관 단기외채 만기연장, 외국인 직접투자의 적극적인 유치로 올해 6월말 현재 6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마이너스 6%로 곤두박질쳤던 성장률이 올해는 최소 플러스 5%~6%대로 예상되는 등 회복세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여기다 실업자도 200만명에 육박하던 위기국면은 벗어나 내년 중에는 100만명 이상으로 줄어들수 있다는 섣부른 전망도 나오고 있다. 30% 가까이 치솟았던 금리는 10%이하의 한자리 금리시대가 되었으며 300대까지 내려갔던 종합주가지수는 900을 넘어서 지수 1,000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같은 위기극복에는 한국정부의 역할이 컸다. 다른나라에 비해 비교적 사정이 나았던 재정을 적극 투입해 외국자본들이 빠져나간 자금시장의 공백과 기업·금융부실에 대한 긴급수혈에 나섰다. 여기다 정부차원의 지급보증까지 해가면서 단기외채의 만기연장과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등 외환끌어들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같은 노력으로 일단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외화유동성위기는 확실히 벗어났으며 투자부적격이었던 국가신용등급은 투자적격으로 회복됐다.이에따라 쓰레기채권(정크 본드) 취급을 받았던 한국물채권들도 이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제대로된 평가를 받게 됐다.
그러나 이같은 위기극복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97년 외환위기, IMF사태를 완전히 졸업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97년 외환위기가 한국의 경제적 취약성에 출발했기때문에 이같은 취약성을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중인 구조개혁을 제대로 마무리 해야 한다느 것이다. 국내외의 한국경제 전문가들은 구조개혁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위기는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KDI보고서는 『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위기발생가능성이 높았지만 경고가 미약했다』며 위기 조기경보체제를 통해 또다른 위기발생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온종훈 기자 JHO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