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부그룹이 동부화재(005830) 자회사인 동부생명이 보유한 2,000억원대의 서울역 앞 호텔 부지 매각에 나섰다. 이는 재무적투자자들(FI)에게 진 동부화재 주식담보대출을 갚고 금융계열사를 지키기 위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이다.
6일 투자은행(IB)과 생명보험 업계에 따르면 동부그룹은 동부생명이 보유한 서울 용산구 동자동 2구역 호텔 부지(대지면적 7,944 m²)를 팔기 위해 여러 인수 희망자와 물밑접촉을 하고 있다. 생명보험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지역은 KTX 서울역은 물론 시내 관광지와도 가까워 호텔 수요가 큰 곳"이라며 "하지만 동부는 현재 땅만 가졌을 뿐 재무구조가 나빠 호텔 짓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고 펀드에 매각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동부화재의 자회사인 동부생명은 지난 2011년 1월 동부건설로부터 해당 부지를 1,271억원에 사들였다. 이 부지는 같은 해 9월 공동주택과 호텔에서 업무시설·호텔·문화·판매시설을 지을 수 있는 곳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현재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 인근 동자동 4구역의 평당 최고 가격이 1억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호텔 부지의 시장가격은 2,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호텔 부지 매각은 김 회장이 호텔 사업을 포기해서라도 금융계열사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김 회장은 2013년부터 잇따라 자산매각에 실패하면서 동부메탈·동부제철·동부하이텍·동부팜한농 등 제조업 계열사의 경영권을 모두 잃었다. 남은 것은 김 회장(7.87%)과 장남인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14.06%), 장녀인 김주원씨(4.07%) 등 김 회장 일가가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동부화재 등 금융계열사들이다. 동부화재는 핵심 금융사인 동부생명(99.9%), 동부증권(016610)(19.92%) 등의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의 금융계열 지주사다. 하지만 지분 대부분이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있는 것이 아킬레스건이다. 특히 김 회장 개인 소유의 동부인베스트먼트와 동부스탁인베스트먼트가 지난해 FI로부터 동부메탈과·동부화재 지분 일부를 담보로 3,100억원을 빌리면서 맺은 동반매각요청권(드래그얼롱)이 김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동부메탈이 법정관리나 주식 차등 감자 등으로 빚을 갚지 못하면 FI가 동부화재 주식을 함께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앞두고 동부메탈의 차등 감자를 추진하자 김 회장이 깜짝 놀라 사재 200억원을 출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대출잔액은 1,250억원 수준. 사실상 채권단 손에 들어간 동부메탈의 경영상황에 따라 동부화재의 운명이 정해지는 현 구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드래그얼롱 조항이 들어간 주식담보대출을 갚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텔 건설 사업은 동부 측이 땅을 보유했어도 그룹평판 리스크 탓에 자본조달이 힘들어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호텔 부지를 팔아 그 돈으로 금융계열사 경영권을 안정화하는 게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전했다.
동자동 2구역 정비계획 허가 관청인 용산구청은 동부그룹 측에 호텔 건축 사업 추진 여부를 수차례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용산구청의 한 관계자는 "당초 그룹이 올 상반기 안에 사업시행 인가 신청을 내기로 했으나 동부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예정대로 호텔 부지를 개발할 수 있는지 답변해달라고 문의했지만 아직 회신이 오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부생명 관계자는 "호텔 건축 사업은 오래 전부터 추진해온 것으로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시행시기가 늦춰진 것일 뿐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