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업은 일본·기술무장 중국에 속수무책… 토종기업 사면초가

■ 위기의 수출
美 시장 쏘나타·캠리 가격차 1000달러로 좁혀져
현대차 지난달 해외 판매량 전월대비 10.1% 줄어
전자·석유화학·조선 등도 中·日 제품에 밀려 고전
中企도 환율 직격탄… "정부 재정지출 확대 나서야"


국내 기업들이 '수출부진'의 늪에 빠진 것은 오래전 일이지만 최근 상황은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전반에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함이 더 하다. 수출부진 업종도 엔저의 타격을 직접 받고 있는 자동차와 전자 등에서 범주가 갈수록 넓어지는 모습이다. 국내 기업들의 수출전망에 비상이 걸린 첫 번째 요인은 수출경쟁력 강화와 양적완화라는 두 바퀴를 굴리며 움직이는 '아베노믹스'다. 일본 정부의 공격적인 수출정책이 낳은 엔저효과는 '전차(電車)군단'과 석유·화학, 조선 등의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국내 산업계 전반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는 원래 도요타 '캠리'보다 2,000~3,000달러 저렴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엔저로 인해 최고급 모델의 경우 캠리(3만4,765달러)와 쏘나타(3만3,525달러)는 1,000달러가량으로 가격 차가 좁혀졌다.

지난 2012년 4·4분기 2.3%에 불과했던 도요타의 영업이익률은 엔저를 등에 업고 지난해 10%대까지 올라섰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올 5월에도 해외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6.1%, 전달과 비교해서는 무려 10.1%나 줄었다.

미국 내 '톱5'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는 현대차의 목표달성이 '엔저 장기화'라는 외부 변수를 만나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확고한 비교 우위를 보이는 TV 부문에서도 엔저에 따른 타격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프리미엄 제품 비중이 늘어난 소니를 제외하고는 일본 업체들의 평균가격(ASP)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1·4분기 632달러였던 샤프의 TV 평균가격은 올 1·4분기 453달러로 28.3%나 하락했으며 파나소닉 역시 같은 기간 422달러에서 343달러로 제품가격이 인하됐다.

이 같은 엔저 장기화는 신흥시장과 유로화 등 글로벌 시장 전반의 환율불안과 맞물리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4분기에 소비자 가전 부문에서 판매량을 늘리고도 각각 1,400억원, 62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배경이 됐다.

전자·자동차뿐 아니라 유가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석유화학업종 역시 엔저에 따른 수출감소 규모가 13.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국의 화폐가치 약세에 따른 수출 전선의 암울한 전망은 중소·중견기업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수출전망과 환변동 대응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올 상반기 수출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는 기업이 78.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일본(43.2%)과 유럽연합(40.0%) 지역을 주력시장으로 삼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고충이 컸다. 중소기업들은 올 상반기 수출에 영향을 끼친 주요 요인으로 엔저나 유로화 약세 등 환율 불안정(53.7%)을 1순위로 꼽았으며 중국의 저가공세 등 수출경쟁 심화(40.0%),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기회복 둔화 등 주력시장 경기침체 (24.7%)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환율 불안정은 일본(86.5%)과 유럽연합(60.9%) 순으로 집계돼 수출 중소기업이 엔저와 유로화 약세 기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기업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A업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1년 새 원화 대비 엔화가치가 10% 이상 떨어지면서 수출 채산성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며 "계속 하락하는 이익률을 좌시할 수 없어서 일본 고객업체에 일정 기간 가격을 보전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엔저현상 외에도 한국 기업의 수출전망에 '비상벨'을 울리는 요인은 또 있다. 기존의 가격경쟁력에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는 기술력까지 더해 무섭게 국내 기업을 추격하는 중국의 존재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은 물론 샤오미와 화웨이에까지 밀리며 올 1·4분기 4위에 그쳤다. 현대차도 같은 기간 중국 시장에서 자동차 26만6,00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쳐 전년보다 판매량이 줄었다. 자국 제품은 성능이나 기술 면에서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떨어진다는 중국 소비자의 기존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환율동향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엔저에 대한 대응이 이미 늦어버린 현 상태에서는 재정지출을 늘리고 금리는 낮추는 등의 공적 개입을 통한 '불황 타개책' 마련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