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설/5월 29일] 오바마의 정치적 계산

파이낸셜타임스 5월 28일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신임 연방대법관으로는 사상 최초로 히스패닉계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제2연방 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이는 그의 대통령 임기 중 가장 두드러지는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인종차별, 낙태, 개인의 권리 등 가장 논쟁적인 이슈들을 연방대법원에 의존하고 있어 연방대법관이 누군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방대법관 임명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인종 간 화합을 강력히 주장해왔고 소토마요르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든든한 후원자로 나섰다. 히스패닉 여성에 대한 연방대법관 지명은 미 법조계에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소토마요르의 인종적 정체성만으로 이번 일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속내는 자신처럼 이민자 가정 출신에 꾸준히 신분상승을 도모해온 소토마요르를 선택함으로써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믿음을 견고히 하겠다는 데 있다. 소토마요르는 기민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이기도 하다. 소수의 공화당원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진보적인 성향의 소토마요르 임명을 반대하겠지만 대부분은 히스패닉 인구의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소토마요르를 환영할 터이다. 소토마요르 연방대법관 지명자가 급진적인 성향인 것도 아니다. 다소 중립적인 성향이었던 전임자 데이비드 수터 연방대법관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해도 연방대법원의 분위기를 확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또 지난 1998년 소토마요르가 제2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됐을 때 그녀에게 찬성표를 던졌던 공화당 의원들도 여전히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당파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은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투쟁가 스타일의 연방대법관은 안 된다는 반대 여론 때문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법원은 환상에 불과하지만 법보다 정치적 계산을 앞세워 연방대법관을 임명한다면 법원에도 국가에도 좋을 게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토마요르가 정말 합당한 자격을 갖췄느냐다. 의회는 인사청문회 때 이 같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소토마요르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사생활을 시시콜콜 따지기보다는 그가 어떤 능력을 갖췄으며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졌는지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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