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美-이란 '30년 앙숙' 관계 끝나나

해빙무드 기대 크지만… "아직은 산넘어 산"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우리는 대화에 나설 것이다. 단 오바마 정부가 말하는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어야 한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혁명 3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중 집회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거듭된 대화 요청에 이 같이 화답했다. 이란측, 오바마 대화 제의에 "근본적 변화 원한다면…" 화답
이란 핵개발·양측 강경파 반발거세 당장 대화 나서긴 힘들듯
온건개혁파 하타미가 출마하는 6월 이란 대선이 최대 변수로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취임 후 첫 인터뷰를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랍어방송과 갖고, “이란과 같은 나라가 주먹을 편다면 우리는 손을 내밀 것이다”고 유화제스처를 보냈다. 또 지난 9일에는 기자 간담회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몇 달 내에 우리가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라며 이란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북한과 함께 ‘악의 축(Axes of evil)’으로 불리던 국가인 이란과의 해빙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오바마의 잇단 대화 제의에 이란 최고위층이 긍정적을 화답하면서 지난 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30년간 앙숙처럼 지내온 미국과 이란 사이에 대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16일부터 한국, 일본, 싱가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4개국을 순방중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역시“이란과의 대화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클린턴 장관은 미국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으로서 조만간 데이스 로스 전 중동담당 특별조정관을 이란 특사로 임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의 대화 시도에 대해 외신들도 일단은 긍정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오바마와 이란’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낳은 결과를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이란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다방면에서 시험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과 이란은 앙숙 그 자체였다. 그 해 11월 4일 발생한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했고, 이후 미국은 50만 명의 희생자를 남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 편을 들었다. 특히 일방주의 외교로 일관한 전임 조지 W 부시 정권 때에는 양국간 갈등 수위가 극에 달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이란을‘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급기야 2008년에는 핵개발 의혹을 들어 유엔을 움직여 3건의 강력한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큰 틀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대화 시도 자체가 큰 변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들은 당신의 적이 아니다. 우리도 실수를 할 때가 있다”면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에게 있어 이란은 대 중동 정책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다. 이란의 도움 없이는 중동의 평화를 기대하기 힘든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이란은 인접국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정국의 주요 변수일 뿐만 아니라 시아파의 맹주로서 시리아,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란은 이라크 내 최대 정파인 시아파와 끈끈한 연결고리를 맺고 있어 이라크로부터의 완전 철수를 목표로 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란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수니파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이 세력을 회복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역시 탈레반에 적대적인 이란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란 또한 피폐한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미국의 태도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란에는 전세계 석유 확인매장량의 10%, 천연가스는 15%가 매장돼 있다. 석유 세계 4위, 천연가스 세계 2위의 자원 부국이다. 하지만 30년째 이어진 제재 조치로 국제 무대에서 철저히 차단 당하면서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이란 중앙은행에 따르면 이란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지난해 12월 전년 대비 26.4%에 이르는 등 30%를 넘나 들었고 올해도 25%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물가 상승률은 이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매년 100만 명의 신규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3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실업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재정수입의 80%를 석유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의 유가 하락은 치명상을 입혔다. 관계 개선에 대한 양국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란의 핵개발 문제다. 이란이 보유하고 있는 사거리 2,000킬로미터의 샤하브-3 미사일에 핵탄두가 결합될 경우 이스라엘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까지 핵무기 사정권에 포함된다. 미국은 이란이 거듭된 무역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핵 농축 기술 확보를 위해 여전히 적극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공위성은 보유한 것도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하나라는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이란 내부정세를 파악하기 힘든 것도 걸림돌이다. 대미 강경주의자들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협상테이블에 올리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이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대미 강경 노선 고수해 왔다. 미국 내에도 반대세력이 만만찮다. 중동정책에서 이스라엘에 일방적인 편애를 보여온 대다수 미국인들은 반 이스라엘의 선봉격인 이란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이란이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지원한 것과 인권 문제들을 들어 오바마의 유화정책에 강력 반대하고 있다. 때문에 양국이 당장 대화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는 6월 12일로 예정된 이란의 대통령 선거는 향후 양국 관계를 가늠할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에 선출되는 이란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4년 임기 대부분을 함께 한다. 이번 대선은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과 온건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 간 양강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하타미 전 대통령이 지난 8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온건파인 하타미 전 대통령의 출마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며 큰 관심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 1997년과 2001년 대선에서 각각 70%, 77%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올리며 연거푸 승리한 그는 3연임 금지 규정 때문에 물러나 있지만 여성과 학생층을 중심으로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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