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화현의 정근화(44ㆍ사진) 대표변호사는 41살에 늦둥이 딸을 얻었다. 큰 아이가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인데 늦둥이는 이제 겨우 3돌을 갓 지났다. 늦둥이 딸 때문에 그의 삶은 180도 확 변했다. 주말만 되면 골프를 쳤지만, 늦둥이가 생긴 뒤로는 웬만해서는 주말약속은 잡지 않는다. 늦둥이 보는 재미가 여간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평일에는 업무가 바빠 퇴근하면 늦둥이는 벌써 자고 있다”며 “주말에는 애기만 보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휴대폰에 담긴 늦둥이 사진을 보여주며 마냥 싱글벙글이다. 너무 티나게 좋아했던지, “큰 애가 보면 섭섭하겠다. 그러면 안되는데…”하며 다시 웃었다. 장남은 지금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황우석 박사 변론으로 주목= 정 대표변호사는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유명한 황우석 박사의 변론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이전에도 기업자문 분야에서 굵직한 사건을 들을 맡는 등 전문성은 인정받아 왔지만, 황 박사 변론으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정 대표는 황 박사 변론 얘기가 나오자 민감한 반응부터 보였다. 아직 사건이 진행중인 탓도 있지만, 사회적인 논란의 정점에 있는 사안이라 자칫 ‘말실수’를 할까봐서다. 정 대표는 황우석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가 인터뷰했다. 그를 변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게 아니라 “황 박사를 변론하지 않으면 국가적으로 손해겠다”는 자신의 믿음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황 박사를 만난 후 그는 그의 진실성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됐고 변론을 시작했다. 벌써 2년째다. 그렇다고 화현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없다. 사건이 복잡하다 보니 투입변호사가 상상을 초월했다. 초기에는 거의 모든 소속 변호사들이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황 박사 변론에 나섰다. 정 대표는 “변호사가 너무 많이 투입돼 우리로선 재정적으로는 전혀 도움 안 된다”며 “그러나 금전적으로 돌아오는 게 없더라도 황 박사의 결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손을 불끈 쥐어보였다. 정 대표는 황 박사와 간혹 접촉한다고 한다. 그러나 황 박사 근황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정 대표는 황 박사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검찰에 의해) 기소돼서는 안 될 일이었다. 법률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황 박사가) 논문 조작은 팩트이고, 이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맞지만 그 외의 문제는 책임질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1번 줄기세포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인데, 이 부분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으니 억울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대표라는 말 안쓴다”= 그는 자신을 ‘변호사’라고만 소개했다. 자신이 화현의 ‘대표’로 있지만 내부에서 그를 ‘대표’로 부르는 이들은 없다. “우린 ‘대표’라는 말 안 쓰고 모두 ‘변호사’라고 부른다”며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몸에 배어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이 같은 컬러때문인지, 화현 곳곳에는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쳐 흘렀다. 정 대표는 화현의 강점으로 ‘편안함’을 꼽았다. 시간 날 때마다 회식이나 와인파티, 심지어 하루 날을 잡아 서바이벌 게임을 즐기러 야외로 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이벤트 행사가 많이 줄긴 했지만, 일을 하면서도 친구처럼 지내는 편안한 분위기는 여전히 강하다는 게 정 대표의 귀띔이다. 그는 “다들 젊고 열정이 넘쳐서 클라이언트의 일을 마치 내 일처럼 매달려 처리하는 편”이라며 “종합적 분쟁 해결에 있어 제일 잘한다는 클라이언트들의 칭찬이 많다”고 했다. “큰 로펌은 이미 상대방이 내 클라이언트인 경우가 있어서 죽자 살자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에 반해 우린 상대방에 대해 총력전을 펼칠 수 있다”며 화현 자랑에 침이 마를 정도다. ◇대형로펌 나와 새 둥지를 틀다= 그는 김앤장과 엔터테인먼트 전문로펌인 법무법인 두우에서 나와 화현을 만들었다. 새 둥지를 튼다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꿈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 “대형 로펌 속에 속해 있다 보니 조직도, 나도 관료주화 되는 것 같았다”며 “청운의 꿈이 퇴색되고 있다는 생각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잘 해서 스스로 프로젝트 이끌어가고 나중에 자기 후배 데리고 또 이끌어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화현을 시작했다.” 그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화현은 생긴지 6~7년 밖에 안됐지만 국내외 크고 작은 기업자문을 수행하며 기업 고객들 사이에서 “만족할 만한 자문을 하는 로펌”이라는 칭찬을 듣고 있다. ◇든든한 지원군 아버지= 그는 어릴 적 부친의 영향을 받아 ‘검사’를 꿈꿨었다. 그의 부친은 서울고등검찰청과 대구지방검찰청 등에서 검사를 지낸 현재 화현의 고문인 정영호 변호사다. 당연히 검사가 될 걸로 생각했는데, 군 법무관시절 아는 선배를 통해 김앤장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변호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 대표는 “어느 순간부터 검찰보다 내 능력만큼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뛰어다닐 수 있는 변호사를 하자고 결심했다”며 “그러나 아버지가 좀 서운해 할 것 같아서 고민도 좀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심 검사 아들을 원했을 것 같던 그의 부친은 정 대표의 선택을 존중해 줬고, 서운함도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정 대표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다. ◇젊은 변호사 도전정신 희박 아쉬워= 화현을 더욱 든든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화현의 구성원들. 정변호사는 함께 일 할 변호사들을 정할 때 도전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그가 김앤장에 입사한 90년대 초반만 해도 변호사는 연수원 성적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다. 현재 부동의 1위인 김앤장조차 당시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망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그러나 정 대표는 “오히려 두려움과 열악한 인식을 감내하는 도전의식이 있어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그런데 요즘 젊은 후배들을 보면 안정된 직장과 보수라는 것에 자족하고, 점점 관료화 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도전정신과 주인의식이 많이 떨어진다는 우려였다. 이 때문에 정변호사는 변호사를 뽑을 때 꼭 1년 동안 함께 일을 해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연애를 해봐야 결혼을 하는 거 아니겠냐”며 “1년 정도 리서치 업무를 주고 함께 지내본 다음에 영입 여부를 가린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재 화현에 있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한 식구가 됐다. 그에게는 속상한 구석이 있다. 기업들이 큰 프로젝트를 맡길 때 실력보다는 로펌의 규모나 특수관계로 판단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낙천적인 그지만, 실력 이외의 요소로 사건을 맡지 못해 생기는 좌절감도 많이 맛봤다. 그렇다고 급작스러운 합병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 그는 “대형 로펌에서 2번씩이나 합병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화현이 인기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조직의 문화 등을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물론 외형확대를 고민하고 있지만, 한꺼번에 급속히 변호사수를 늘리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물이 조금씩 흘러서 희석되지 않아야 하는데 갑자기 다른 물이 세게 들어오면 기존의 흐름이 깨지지 않겠느냐”며 “인위적으로 몸집만 늘린다고 안 오던 클라이언트가 오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스스로 “안 늙는 체질”이라고 말한다.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라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선배들도 만날 때마다 ‘넌 안 늙는 거 보니깐 체질인가 보다’고 말한다”며 “몇몇 동기는 내 머리를 보고 ‘그거 오리지널이냐’고 물어보기까지 한다”고 웃었다. 여기에 늦둥이 딸까지. 화현의 싱싱함은 바로 정 대표로부터 샘솟고 있다는 느낌이다.
■ 법무법인 화현은 변호사·회계사 20여명…기업자문^지재권분야 강점 법무법인 화현은 국내외에서 전문성을 키워온 20여명의 변호사ㆍ회계사들이 모여 2001년 9월 문을 연 기업자문 전문 로펌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법무법인 아람과 합병해 전문성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정근화 변호사를 비롯해 손경한, 이봉구 변호사가 공동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 변호사의 부친이자 전 서울고등검찰청 등에서 검사를 지낸 정영호 변호사가 고문을 맡고 있다. 화현은 문을 연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젊음과 패기를 내세워 노력한 끝에 ▦동성화학 주식회사 구조조정 ▦한전기공 민영화 ▦마이크로소프트 및 엡손 지재권 침해 방어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며 주목을 받고 있다. 화현은 2013년까지 변호사수를 50명 이상으로 늘려 규모의 성장을 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FTA체결 및 전면적인 시장개방을 앞두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미 외국의 유수 로펌들과 기업자문 등 전문분야별로 네트워크를 구축,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 약력 ▦ 1964년 서울 출생 ▦ 1982년 서울 경희고 졸업 ▦ 1986년 서울대 사법학과 졸업 ▦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 합격 ▦ 1988년 사법연수원 수료(제17기) ▦ 1995년 캐나다 정부와의 WTO 협의회 한국정부대표단 법률고문 ▦ 1997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자격 취득 ▦ 2001년 법무법인 화현 개업 ▦ 2008년 법무법인 화현 대표변호사 ▦ 2008년 국무조정실 지적 재산권 보호정책협의회 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