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청와대 취재 기피증

비서실 출입을 제한하는 대신 언론의 취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던 청와대의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낮에는 고위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 전화메모를 남겨봤자 콜백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밤늦게 집으로 전화를 했다가는 사생활을 침해하는 `무례한 기자`로 찍히기 일쑤다. 수석이상 고위직들이야 바쁘니까 그렇다 치자. 그 아래 행정관들이 요즘 보여주는 행태는 실망 그 자체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는 신언론정책과 개혁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 지에 대한 회의마저 든다. 짧게 말해 이들이 한술 더 뜬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들과 술 마시며 헛소리나 하고…` 꾸중이후 행정관들의 입은 아예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최근의 몇 가지 사례. 정책실의 한 보좌관은 “걸리면 죽는다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얘기를 해줄 수 있겠는가”라며 전화취재를 거부했다. 총무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정원과 관련된 질문을 하자 대변인실을 통해 취재절차를 밟아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극비사항이 아닌데도 몸을 사린다. 그나마 이만하면 다행이다. `모르쇠`가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뻔히 아는데 `그래도 말해달라`고 닥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국가안보보좌관실의 한 행정관은 지난 15일 나종일 보좌관이 국무회의에 참석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대뜸 “(기자들이)그런 것까지 알아야 되나요”라며 “답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대목에선 정말 아찔해진다. 이것은 명백한 정보 차단이자 국민들에 대한 알권리 침해다. 알고 싶은 것과 말하고 싶은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행정관은 스스럼없이 언론이 `알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딴죽을 걸었다. 국민과 언론에 대한 만행이다. 이런 일들이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새 정부가 준비 안된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지않을까. 개혁의 새 싹은 허허벌판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나는 게 아니다. 싹이 틀 수 있는 환경조성과 열린 정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기자들의 손발을 묶어 놓는 구조라면 언론개혁을 아무리 부르짖어봐야 상처만 남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박동석기자(정치부) everes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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