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시에 `달러 약세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달러 약세는 미 기업들의 수출 가격을 낮춰 실적 개선의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지나칠 경우 증시에 큰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가 하락을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85년 미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 절상을 골자로 한 이른바 플라자 합의가 이뤄진 후 달러 약세→물가 상승 →이자율 급등→87년 증시 대폭락(블랙 먼데이)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어 이 같은 위기감이 형성되고 있다.
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3년여 기간 동안 달러는 유로에 대해 약세를 지속, 무려 3분의 1이나 가치가 하락했다. 엔화 등 주요 외환에 대해서도 달러는 약세 기조다.
이 같은 달러 약세는 일정 한도 내에선 증시에 긍정적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수출 가격을 낮춰 결국 주가 상승과 직결되는 실적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 물론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물가 수준이 현저히 낮아 아직 걱정할 만한 단계는 아니며, 또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경제 전반에 약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러나 여기서 더 밀리면 위험하단 인식이 월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22일 이와 관련 달러 약세가 내년에도 지속될 경우 달러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달러에 대한 투자 매력 감소는 이미 가시화 되고 있다. 올들어 8월까지 매월 평균 655억달러를 유지하던 해외 투자자들의 달러 순 매수액은 9월 285억달러로 급락, 지난 98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선 적어도 매달 500억달러가 유입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선 초저금리와 정교해진 환율 시스템, 잉여 설비 등이 방어 장치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달러 약세가 심화될 경우 지난 87년 블랙 먼데이 악몽이 재발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 달러 하락과 저금리를 담보로 한 성장이란 현 상황이 당시와 많은 면에서 유사점을 보이고 있어 이 같은 우려감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AWSJ은 이와 관련 다우지수가 1만을 넘어서는 등 미 증시가 상승 국면에 있는 상황에서 블랙 먼데이 재현은 기우일 것이란 낙관론이 우세하지만 투자자들이 달러 추가 하락을 우려, 주식이나 채권 등 미국 자산 털어내기에 본격 나설 경우 증시엔 어떤 식으로든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창익기자 windo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