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고물가 가능성"
올 성장률 4%이하 전망…경상흑자 더 늘수도
전철환 한은 총재는 21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조찬 강연에서 우리 경기를 진단하고 그 처방책을 제시했다.
전 총재는 "교역조건이 악화되면서 국민들이 체감경기가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올해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은 수준 이하로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 총재는 "현 상황은 저성장 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다"며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교역조건의 악화 심화
전 총재는 반도체 수출가격은 떨어지고 수입 원유가격은 높아지면서 교역조건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지난해 우리 경제의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괴리되는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 총재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9% 였지만 교역조건을 반영한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3%대에 불과해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큰 차이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들의 손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적기 때문에 국민들이 경제 회복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실제 지난해 2ㆍ4분기 GDP와 GNI의 격차는 8%까지 벌어졌고 연간으로도 6%대의 격차가 발생했다.
GDP와 GNI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교역조건이 악화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까지 악화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잠재성장률 밑도는 경제 성장
전 총재는 우리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얼어붙는 동시에 미국과 세계 경제 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 올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5~6%) 수준을 밑도는 4%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총재는 "1월 경제상황은 내외수요가 위축되면서 실물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됐다"며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성장을 이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총재는 8일에도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후 "1ㆍ4분기와 2ㆍ4분기 중 성장률은 3%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이날 강연에서 "올 1ㆍ4분기를 소저점으로 2ㆍ4분기부터 경기가 회복되면서 늦어도 하반기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밝혀 최근 재경부의 2ㆍ4분기 회복론과 입장을 같이했다.
전 총재는 그러나 경상수지흑자 규모는 당초 예상보다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경상흑자를 45억달러 예상했지만 상황이 좋아지고 있어 70억~80억달러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의 한 관계자는 "경기 하강 등으로 인해 수출과 수입이 모두 줄어들 것"이라며 "내수의 침체로 인한 수입의 감소가 더 빨리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 가능성 여전
전 총재는 "현재 우리 경제는 저성장ㆍ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물가불안이 상존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 총재의 생각은 8일 금통위가 콜금리 인하 과정에 대해 설명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전 총재는 " 금통위가 콜금리 0.25%포인트를 인하하는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정책판단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1월에는 실물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되는 데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기대비 4.2%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지만 소비ㆍ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돼 통화정책면에서의 대응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처방책
한은은 신축적인 통화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침체에 빠진 기업들의 자금 공급 확대와 금융시장의 안정 도모에 주력을 다할 계획이다.
또 경기가 계속 침체에 빠질 경우 금리를 인하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경기를 살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전 총재는 "앞으로 금융자금이 기업부문으로 최대한 유입할 수 있도록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한은의 유동성 조절 대출제도를 통해 신속히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개별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전체 금융시스템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유의하겠다"고 말했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경기둔화의 폭과 속도, 물가상승의 원인, 자금시장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최선의 정책을 선택해나가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전용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