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현의 게임이야기] 핵 프로그램

게이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통용되는 온라인 게임 해킹 프로그램은 종류도 가지가지고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저지하려는 개발사들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속에서도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늦추지 않는 열성은 가히 경이로울 지경이다. 게임 핵 프로그램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스피드핵`. 사용자의 컴퓨터를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작동하도록 해주는 불법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다른 이용자들 보다 몇 배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어 캐릭터 성장을 비롯한 게임 내 각종 생산활동을 같은 시간동안 월등하게 해낼 수 있다. PvP(Player vs Player) 모드에서 부당한 우위에 서게 됨은 물론이다. 슈팅게임 포트리스에서는 자기 차례에 한번씩 쏘도록 되어 있는 포탄을 상대편이 죽을 때까지 발사시키는 `무한 샷` 핵이 등장해 게임 자체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A3를 서비스하는 액토즈소프트는 최근 `자동 사냥` 핵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는 캐릭터를 세워두면 몬스터 공격에 반응해 자동으로 사냥하도록 해주는 핵으로 다른 일을 할 때 심지어는 자는 동안에도 캐릭터의 레벨을 올릴 수 있다. 이 외에도 사이버 머니를 올려주는 `돈 패치`, 캐릭터 경험치를 비정상적으로 쌓도록 하는 `경험치 핵` 등 게임마다 관련 불법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이용된다. 이용자 입장에서 이들은 훌륭한(?)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이러한 핵 프로그램은 게임사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때 그때 개발해 내는 방어막도 잠깐 뿐, 패치 버전으로 또다시 등장해 버젓이 사용되곤 한다. 계정차단(블록) 등의 강경책도 내세워 보지만 일일이 잡아내기란 쉽지가 않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흥행하고 있는 장르인 MMORPG(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 각종 핵 프로그램들이 수없이 등장하는 이유가 한편으로는 게임 자체의 문제점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게임 진행 과정보다는 캐릭터 성장과 사이버머니 불리기에 초점이 맞춰진 게임들이 이용자들에게 잘못된 욕심을 갖게 하는데 한 몫을 한듯하다.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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