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한명숙 총리 지명 배경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4일 열린우리당 한명숙(韓明淑) 의원을 새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은 남은 임기동안 국정을 안정.화합의기조로 운영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앞으로 가파르게 전개될 정국 상황에서 사회 양극화 해법마련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주요 국정과제를 차질없이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정치권과의 원만한 관계 설정이 필요하고, 그런 차원에서 정치력과 정책능력을 겸비한 한 의원이 적임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金秉準) 청와대 정책실장의 장점인 정책의 연속성이란 점도 중요하지만,정치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는 정무적 능력이 필요하다는 지점에 노대통령의 고민이 착근한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 의회와의 관계와 정국 변수를 의식한측면이 강하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노 대통령은 전날 양극화 문제를 주제로 한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비롯, 미래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권 등의 책임있는 참여와 협조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누차 강조해왔다. 이는 5.31 지방선거 등 정치일정을 감안해 초당적 국정운영 의지를 밝힌 것으로해석됐으며, 그런 차원에서 여당 의원이지만 정치색이 엷고 `코드인사' 논란에서 자유로운 한 의원을 적임자라고 본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김 실장이 지명되면 야당이 당장 지방선거를 겨냥해 `코드' 운운하며 참여정부 심판론을 이슈화하고 나설 것이란 부담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김 실장 지명에 대한 절대 불가 입장에서 `한명숙 카드'가 부상하자김 실장 지지로 급선회한 배경에 이런 정략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얘기다. 한 의원의 총리 지명은 향후 당청관계와 의회구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도 풀이된다. 당장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에 이어 다시 여당 의원이 기용됐다는 점은 `정책에서의 당정일치'를 전제로 한 여당과의 공동운명체적 관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앞서 지난 17일 여야 원내대표들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일부의 여당당적 이탈 요구에 책임정치와 정서적 측면을 들어 부정적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총리 인선은 노 대통령의 당적 문제에 관한 기존 입장이 재확인되는 결과가 됨으로써 여당에는 안정감을 주고, 야당엔 정계개편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한명숙 카드'는 총리인준 표결을 계기로 정국의 캐스팅보트를 쥔 민주,민노당 등 소수 야당과의 관계도 고려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의원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고 오랜 재야 활동으로 민노당과도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한 의원은 2004년 여당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공동발의했고, 여야 합의로 통과된 과거사법에대해서는 찬성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했었다. 여기에 한 의원이 현정부 정책 전반에 걸쳐 이해의 폭이 넓다는 점도 노 대통령이 `김병준 카드'를 접는 데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총리 지명을 놓고 경합했던 김병준 실장만큼 정책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지는못하지만, 한 의원은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낸데 이어 참여정부 첫환경부 장관과 여당의 국정과제추진특별위원장을 역임해 행정도시 건설 등 주요 정책의 큰 흐름은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온화하고 합리적 성품에다 `여성계의 대모'로 불릴 만큼 오랫동안 재야와 시민단체에서 경력을 쌓은 것도 한 의원이 지닌 잠재력이자 장점으로 꼽힌다. 이는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여론을 중시하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돼 진척이 없는 국민통합연석회의와 노사정 대화 등 각종 사회갈등 현안을 대화와 타협의 견지에서 풀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을 낳고 있다. 이는 책임총리제의 근간을 유지하려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와 맥이 닿는대목이다. 하지만 한 총리 지명자가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약하고, 내각을 확실하게 통할했던 이해찬 전 총리의 역량과 비교해볼 때 앞으로 공직사회를 장악해나갈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선 한 총리 지명자가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라는 상징성에 갇힌 채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만 가중시킬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따라서 얼마나 빠른 시일내에 정책을 파악하고 공직사회에 대한 리더십을 확보하느냐가 한 지명자에게 던져진 당면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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