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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자가 넘는 이임사를 몇 번이나 읊었다. 몇 시간의 연습 끝에 울음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예행연습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재직기간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이야기하려 하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지켜보던 몇몇들이 힘내라고 박수를 쳤다. 더 많은 이들은 함께 눈물을 훔쳤다. 떠나는 행장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신임 행장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직원들의 이름이 호명되자 눈물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이 3년 임기를 끝마치고 27일 공식 퇴임했다. 조 행장이 33년의 은행원 생활에 마침표를 찍던 날, 그의 퇴임식이 열린 기업은행 15층 강당에는 기쁨과 슬픔, 기대와 희망이 교차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조 행장은 무엇보다 직원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근무시간 정상화를 통해 기업은행 문화에 사람 냄새를 심어줬다고 자평했다. 그것이 조 행장에게는 기쁨이었다.
조 행장은 우리 곁을 먼저 떠난 동료들에게는 영원한 마음의 빚을 갖고 살겠다고 말했다. 떠난 동료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렇게 남은 직원들과 함께 슬픔을 나눴다.
그리고 눈 뜨면 출근하고 싶고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직장으로 만들어주기를 모두에게 부탁했다. 근무시간 정상화는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이 아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임직원 모두가 합심해주기를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권선주 신임 행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주기를 바랐다. '위기에 더 강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며 목표 앞에 하나가 되는 것'이 기업은행 특유의 DNA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기업은행이 위대한 은행이 돼주기를 희망했다.
이임식이 끝난 후 기업은행 본점 1층 로비에는 200명이 넘는 본점 임직원들이 운집해 조 행장의 '마지막 퇴근'을 지켜봤다. 임원 퇴임식날 전 직원이 마중하는 것은 기업은행의 전통이다. 본점에서 환경미화업무를 담당하는 한 실버근로자는 "가장 하찮은 우리에게까지 따뜻한 관심을 보여줬던 분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