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5만명. 2차대전이 한창일 때 미군 병력 수다. 승리가 확실해질수록 미국에 고민이 생겼다. 전사 및 실종자 42만여명을 제외해도 1,600만명이 넘는 군인들이 제대하는 날의 후유증을 우려해서다. 전쟁이 끝난 뒤의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고용대란은커녕 번영가도를 달렸다.
어떤 마법이 일어난 것인가. 참전국 중 산업시설이 보전ㆍ확충된 유일한 국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고용 문제에서는 다른 비책이 있었다. 1944년 6월22일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명한 제대군인 원호법(GI Bill)이 그것이다.
골자는 제대군인에 대한 광범위한 지원. 모두 1,040만명의 참전용사가 이 법의 혜택을 받았다. 미국이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제대군인의 대학진학. 무려 780만명이 학비를 걱정하지 않고 대학에서 로스쿨까지 다녔다. 이 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러더스’의 후일담이 말해준다. 군대에 남지 않은 부대원들은 대부분 이 법의 지원 아래 집을 사고 대학에 진학해 사회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사회분석과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명저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미국이 지식사회로 전환한 기반이 원호법에 있다고 분석했다. 정말 그랬다. 대학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평가 속에서도 법의 혜택을 받은 제대군인들은 탄탄한 중산층으로 자리잡으며 1950~1960년대 번영을 이끌었다. 오마바 대통령의 외할아버지도 이 법 덕분에 하층 백인에서 중산층으로 올라섰다.
소외계층인 흑인들이 대거 대학에 진학해 백인사회와의 격차를 좁힌 것도 이 법의 영향이다. 요즘 전역병들은 학비의 절반 정도만 받는다고 하지만 선진국치고는 복지수준이 낮은 미국에서 이 법은 여전히 보석과 같은 존재다. 부럽다. 인력에 대한 투자가 미래를 결정한다. 사람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