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D-3] ⑤ '한반도 평화' 새지평 열까

`정상차원' 관심 재확인..`北核 전환점' 될듯

오는 18∼19일 부산에서 열릴 제13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 역시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 등 경제.통상협력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제5차 북핵 6자회담이 9일부터 개막되어 정상회의 직전까지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북핵 문제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APEC 기간에 양자 및 다자 정상회의를 통해 역내 최대 정치현안인 북핵 문제가 비중있게 다뤄지고, 여기에서 나올 정상들의 `메시지'에 따라 제5차 6자회담의향배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가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줄 주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6개국이 5차 6자회담을 APEC 행사를 전후로 해서 1단계와 2단계로 나눠 진행하기로 한 것도 APEC 정상회의의 중요성을 감안한 결정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APEC 정상회의는 북핵 문제와 관련, 여러차례 `성가'를 발휘한 바 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정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APEC 정상들의 공동 목소리 또는양자회담을 통해 대북 메시지를 보내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2002년 10월 북핵문제가 불거진 지 열흘 만에 멕시코의 로스카보스에서 열린 제10차 APEC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결의한 특별성명이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북핵 위기 초기에 긴장과 혼돈이 뒤섞인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큰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2003년 방콕과 2004년 산티아고에서 진행된 제11차와 12차 APEC 정상회의에서도 북핵 협상의 조속한 재개와 평화적 해결원칙이 천명되면서 북핵 `위기지수'가그 이전에 비해 낮아졌던 게 사실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부산 APEC은 일찌감치부터 기대를 모아왔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올 1월29일 베를린에서 "부산 APEC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국제적으로 선언하는 역사의 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이튿날다보스포럼에서 "APEC 전에 6자회담이 성과를 축적해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면 탈냉전의 역사적 상상력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정 장관이 `9.19 공동성명' 채택을 미리 예견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부산 APEC이 북핵의 파고를 넘어 한반도 냉전해체와 평화체제 구축, 나아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이라는 역내 최대 관심사에 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9.19 공동성명'이 북핵문제 해결의 목표와 원칙을 담았다면 5차 6자회담에서는이를 구체화해 한반도 비핵화로 가기위해 누가, 언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를 짜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2차 북핵위기가 불거진 지 3년 만에 `공약 대 공약' 합의로 비핵화의 출구를확인했다면 이번에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른 이행방안을 조율하는 새로운 협상인 셈이다. 그러나 길은 험난해 보인다. 이행방안과 관련, 이해득실이 각각 다를 것으로 보여 배수진을 친 대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APEC 행사전 1단계 회담에서는 각측이 준비해온 구상을 내놓고 상대방의 입장을탐색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어 본격적인 합의 시도는2단계 회담 이후가 될 것을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1단계 회담에서 6개국이 이행방안과 관련, 자국이 희망하는 `최대치'만을 내놓고 갑론을박에 치중하고 그런 후에도 아무런 준비과정이 없이 2단계 회담을맞이한다면 북미 양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의 합의는 힘겨울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APEC 정상회의가 주목되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우선 16일 한중, 17일 한미, 19일 한러 정상회담과 APEC 정상회의를 통해 북핵문제에 대한 '정상 차원'의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이를 통해 5차 6자회담이 나름대로 탄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단계에서 상대방이 수용하기 곤란한 주장으로 이행방안 합의를 막는 장애물이생긴다면 APEC 정상회의와 더불어 각종 양자 정상회담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역할을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APEC 정상회의에서 `핵무기없는 한반도'를 확인하고 한반도 냉전구도의 해체를 넘어 평화체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한다면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가 21개국 정상들의 한 목소리로 공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종전의 APEC 정상회의가 6자회담에 시동을 걸거나 북핵 상황악화 방지에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회담의 진전을 도모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방북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끌고 있다. 아직 추론에 불과하지만 최근 미국 내외의 악재로 곤경에 처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핵문제의 해결을 외교의 성과로 삼기 위해 보다 `전향적' 결정을 한다면 미국내 대북 강경세력의 반대에도 불구, 힐 차관보의 방북 가능성은 남아 있다. 힐 차관보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적어도 6자회담 단장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이상의 북한 고위층과 만나 양국간 정치적 오해를 불식시키고 북핵 타결을 위한 실무적인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상황이 급진전될 개연성도 적지 않다. 정부 당국자는 "부산 APEC 정상회의가 주목되는 까닭은 본래의 목표인 역내 경제.통상 자유화 촉진, 테러.자연재해 등의 재앙에 공동대처하는 것이지만, 최대 난제인 북핵 해법에 대한 `정상 차원'의 가닥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