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말 한국경제를 휩쓸었던 최고의 테마 벤처기업들은 지난 세기를 어떻게 마무리했으며 새천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이들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기업들을 찾아 보았다./편집자주라마다르네상스 호텔 근처 상록회관 뒷편에 있는 5층짜리 건물.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98-29 준성빌딩. 이 건물에는 주문형반도체를 설계, 제조하는 벤처기업 에이직프라자(대표 정태섭·鄭泰燮)가 입주해 있다. 한층이 80평이 조금 넘는 이 건물에서 에이직프라자는 1층과 4층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구 삼성반도체통신)에서 반도체를 설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에이직프라자를 창업한 정태섭사장.『지난해는 반도체설계 용역만 하던 단계를 넘어 제조업체로 변신한 해였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자체개발해 판매했다』 그의 얼굴에는 99년을 알차게 보냈다는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이 회사는 지난해 보안시스템에 들어가는 화상처리용 애플리케이션 칩으로 CCTV에 잡힌 화상을 압축하고 전송하는 핵심부품을 주력 생산, 98년 10억원을 조금 넘었던 매출이 30억원까지 올랐다』
鄭사장은 현재 개발중인 디지털카메라에 들어가는 핵심칩이 성공하면 지금보다 회사규모가 2배이상 커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했다.
새천년을 맞는 에이직프라자의 모습은 연구실이 보여줬다. 전체 18명인 연구인원 가운데 반절이상은 신정연휴에도 출근했다. 鄭사장과 삼성시설 회사동료였고 3년전 에이직프라자에 합류해 연구소장을 맏고 있는 오용섭(吳鎔燮)씨는 『신기술개발에 가속도가 붙은 상황에서 하루를 쉰다는 것은 보통때와 달리 손실이 많다』며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연구원 대부분이 신정연휴를 회사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吳소장 자신도 지금은 경기도 부평에 살고 있지만 출퇴근 길바닥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아까워 아예 근처로 이사올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벤처기업들은 이렇게 새천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다 더 새로운 제품, 그리고 앞선기술을 만들기 위해 뛰고 있다. 휴일을 잊은지 오래고 잠을 줄이면서 세상 사람들이 기억할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매달리고 있었다.
테헤란로의 디지털밸리보다 앞서 대표적인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손꼽혔던 양재·포이동.
며칠전 삼호물산빌딩(서초구 양재동 275-6)에서 일동제약빌딩으로 이사온 양재정보통신(대표 성기철). 1.5배나 넓어지고 세련된 사무실을 갖게 됐다는 기쁨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더불어 새천년에는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솟아나고 있었다.
광전송장비 등 케이블TV 전송 및 관리장비와 증폭기 등을 생산하고 있는 이 회사는 근처에서 제법 알려진 중견 벤처다. 97년에 이미 210억원대 매출을 올렸던 기록을 갖고 있다.
98년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매출이 줄고 같이 일하던 직원을 내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이제는 성장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97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고 올해는 매출 3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배효경기획부장은 『용인공장에 떨어져 있던 개발실을 사무실이전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왔다』며 『시장과 가까이 있으면서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양재정보통신이 세운 2000년 목표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수출 1,000만달러 달성. 배부장은 『기술협력을 하고 있는 미국 ADC사를 통해 국내에 필요한 제품은 수입하고 여기서 개발한 제품은 미국 등지로 수출한다는 계약을 맺었다』며 『지난해 700만달러였던 것을 올해는 더 높여잡았다』고 밝혔다. 음성을 데이터로 바꿔 인터넷을 통해 통화할 수 있는 「ID텔레폰」도 이들이 뉴밀레니엄을 위해 야침차게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난해 12월3일 코스닥에 등록돼 「벤처드림」을 일궈낸 웰링크(대표 신동환·申東還)도 새시대를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데이터송수신을 하는데 4개씩 필요하던 회선을 두개만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WDM 등이 올해 시장에 출시된다. 또 이미 한국통신에서 인증을 받은 중소형 광중계기가 본격적인 매출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남현철전무가 그리는 새해 밑그림이었다. 이들도 시장범위를 세계로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사업초기 기술을 이전받았던 미국 디지털링크와 함게 미국·동남아 등지로 수출을 추진한다는 복안이었다.
네트워크 통합솔루션이 주력인 에스디엔에스(대표 이석재·李錫宰)는 업무효율은 높으면서도 비용은 3분의1 밖에 들지 않는 신제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지면 매출이 50억원대로 껑충 뛸 것이라고 이석재사장은 설명했다.
현민시스템 이화순(李和順)사장은 『PC로 PC를 배우는 CD타이틀 등 그동안 만들었던 각종 컨텐츠를 제공하는 인터넷사이트를 개설하는 것이 올초 목표』라고 말했다.
최근 성남 아파트형 공장에 새공장을 차린 한텔(무선호출기 및 통신장비 업체)도 큰 꿈을 가졌다. 이광철(李光哲)사장은 『같은 시스템으로 가입자를 5배까지 늘릴 수 있는 플렉스 페이저 수출물량이 한달에 200만달러를 넘어설 것같다』며 『대기업과 함께 무선가입자망(WLL)을 들고 해외에 진출하고 세계 최초로 개발중인 스마트안테나(주파수이용 효율을 높여주는 안테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라고 올 일정표를 보여줬다.
양재·포이밸리 벤처기업 지원센터 최정헌(崔正憲)소장은 『정보통신기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인지 새천년을 맞는 이곳 사람들의 표정은 어느때보다 밝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벤처지원 정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몇년내 실리콘밸리처럼 세계적인 벤처단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테헤란 그리고 양재·포이밸리에 근처 압구정동까지 합하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벤처기업은 1,300~1,500여개. 이들의 바램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껏 자랄 수 있는 토양과 자유로움이 보장되는 사회.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더 큰 성공을 향한 발디딤이 가능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벤처기업들은 화려한 수식어로 새천년 청사진을 그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싱그런 표정과 도전정신으로 새해 각오를 대신했다. 이곳에서 이들의 꿈이 영글어 갈수록 한국경제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박형준기자HJ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