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환 사장 쌍용그룹 종합조정실(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전문경영인)

◎직언 서슴지않는 「싱크탱크」/신속한 의사 결정/유연한 조직철학/그룹업무조정 능숙/쌍용의 관제사/자동차 정상화 온 힘/위기탈출 본보기로『샐러리맨은 사직서를 품안에 품고 언제든지 회사를 그만둔다는 각오로 소신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김덕환 사장(54)의 직업관이다. 이 신념은 그를 모든 일 처리에서 항상 자신있게 처리하도록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룹에서 그는「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경영자다. 김석준그룹회장에 대해서도 항상 직언을 하는게 그의 일이다. 단적인 예가 김사장의 제안으로 그룹 사장단 경영실적 보고회의 운영방식이 바뀐 것. 종전에는 사장이 회장에게 보고만 하고 끝났다. 그러나 지금은 보고 후 질의응답을 하고, 토론을 한다. 흔히 전문경영인이라면 오너경영인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사뭇 다르다. 김사장은 94년 그룹 종조실장에 임명되자 마자 홍보실, 기술기획실을 통합해 종합조정실을 9개팀으로 확대개편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유연한 조직운영이 장점인 팀제를 도입한 것. 그리고 지난 6월에는 감사실을 통합했다. 김사장은 그 배경에 대해 『국내 기업사를 보면 영속적인 발전을 이끌어가는 그룹은 대체로 그룹 내 자본, 인력, 정보, 기술, 홍보력을 적절히 응집해 그룹 차원의 높은 경쟁력을 확보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왔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합조정실의 기구확대 뿐 아니라 기능도 강화했다. 계열사가 낸 자료를 그저 취합이나 하는 「집계소」가 돼서는 안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종조실은 계열사의 경영실태를 직접 모니터링하고 어려울 때는 특공대를 투입해서 긴급지원하며, 국내외 대규모 사업진출에 있어서도 계열사간의 업무를 조정하고 계열사에 역량을 모아주는 조정역할을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실행하고 있다. 그는 『이같은 기구확대나 기능강화는 군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계열사에 대한 효과적인 서비스와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사장은 김성곤창업회장과 그의 장남인 석원전회장, 차남 석준현회장 등 2대에 걸쳐 3명의 그룹회장을 측근에서 보좌한 참모중의 참모다. 행정고시를 거쳐 상공부 통상진흥국 사무관으로 일하던 그가 쌍용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창회장 시절. 김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재임할 당시 비서실장으로 스카우트한 것. 이후 줄곧 (주)쌍용에서 근무하면서 91년 사장에 올랐으며 94년 종합조정실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사장의 「가계」은 의외다. 부친은 원로연극인인 김동원씨고, 막내동생은 인기가수로 한때를 풍미한 세환씨. 예술인 집안에서 경영인으로 활동하는 그는 돌연변이로 통한다. 그렇다고 김사장이 예술에 대해 문외환이란 뜻은 아니다. 인터넷 여행을 수시로 즐기는 「컴퓨터 도사」로 통하는 그는 비디오테이프와 LD(레이저디스크)를 9백여개나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영화와 클래식 음악의 마니아다. 게다가 틈나는 대로 클라리넷과 알토 색스폰을 연주하는 멋쟁이다. 요즘 그의 최대관심은 쌍용자동차의 경영정상화다. 이 문제가 워낙 중요해 취미생활을 하거나 건강을 돌볼 틈이 없을 정도. 그런데도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피로하거나 어두운 기색이 없다. 강체질이다. 또 그룹차원의 철저한 자구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고, 선도적인 대기업군의 위상도 어떤 초일류기업에 손색없이 지켜가고 있다는 평가도 한몫을 하고 있다. 『자동차를 제외하면 모든 계열사들이 재무구조가 튼튼하다. 벤츠, GM, 화교상 등 자동차를 돕겠다고 나선 원군도 많다. 게다가 모든 임직원의 각오가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다. 때문에 조만간 현재의 어두운 터널을 슬기롭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사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감에 차있다.<구동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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