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IMF처방 다음은

09/15(화) 18:37국제통화기금(IMF)이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처방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미국식 처방에 오류가 있었음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어서 앞으로의 대처가 주목된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러시아와 중남미 등으로 확산된 것은 미국 등 선진국들의 안이한 대응자세 탓도 있지만 IMF의 판단착오가 한몫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IMF의 실책은 한마디로 국가별 특성을 무시한 점이다. 경제여건이 나라마다 다른데 일률적으로 고금리, 재정긴축을 강요하다 보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폴 크루그먼 MIT교수와 제프리 삭스 하버드대 교수 등을 중심으로 IMF의 무리한 처방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재정적자로 경제가 파탄난 중남미국가들에 쓴 고금리, 긴축 등을 기업부채가 많은 아시아국가들에 쓸 경우 산업기반을 무너뜨려 외채상환이 더 어려워진다는 주장이었다. 이들 전문가들의 주장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현실을 직시한 내용이었다. 기업 및 금융기관 부실이 심한 우리 경제의 경우는 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IMF가 이번에 아시아 위기 처방에 실패했다고 인정한 것은 이들 전문가들의 주장을 대폭 수용한 셈이다. 국제금융시장의 최후 보루인 IMF가 뒤늦게 나마 정책실패를 인정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반성은 실효성있는 새로운 대책을 제시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IMF가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의 세계경제 상황은 현재와 같은 IMF로는 안되겠다는 국제적인 공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IMF는 지난해 아시아 환란의 발생 가능성을 전혀 감지하지못했다. 조기경보를 울렸다면 러시아와 중남미까지 흔들리는 지경까진 오지않았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다보니 최근에는 IMF자금이 고갈나 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시아환란이 아무도 예상치못한 돌발사태이기는 하나 전문가 부족, 지나친 비밀주의, 미국 중심의 운영체제라는 IMF내의 문제점은 해결돼야할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문제점이 방치될 경우 IMF는 국제금융 관리 능력을 회복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IMF가 일단 지원에 나설 경우도 기존의 방식을 지양해야할 것이다. 구제대상 국가의 여건과 특성을 최대한 고려해 가장 적절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이는 이번 보고서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한국의 경우 경제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미국식 시장경제원리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예컨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가 신용경색의 최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요구한 개혁프로그램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고는 보지않는다. 기업·금융개혁 등에 대한 IMF의 이행조건은 우리 경제엔 단기적으론 쓴약이지만 장기적으론 양약과 같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실행돼야할 것이다. 다만 한국경제를 빨리 회생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원칙을 지키는 범위에서 현실에 맞게 수정할 수도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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