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19일 마침내 창립 주주총회를 갖고 실질적으로 출범,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됐다.
이번 통합은 자본시장의 발전에 따라 규모와 효율성을 늘리려는 시장참가자들의자발적 필요성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정부주도로 진행된 것이어서 그 과정에서이런저런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따라서 통합거래소가 향후 내부통합에서부터 통합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을지가 성과를 평가하는 핵심 잣대가 될 전망이다.
◆ 우여곡절끝 49년만에 단일체제로
이번 통합으로 지난 1956년 3월3일 12개 상장사를 가진 '대한증권거래소'가 한국의 공인 자본시장으로 출범한 이래 49년만에 자본시장의 문패가 바뀌게 됐다.
그러나 지수선물 등 주식관련 파생상품시장을 증권거래소에서 선물거래소로 이관하는데서 촉발된 지난 2년여간의 통합논의는 순조롭지 못한 것이었다.
당초 파생상품 이관을 둘러싸고 고유자산인 지수선물을 넘겨줄 수 없다는 증권거래소와 법령에 따라 2004년부터 이관받아야 한다는 선물거래소의 대립은 해결점을찾지 못한채 겉돌더니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부관계자와 학계를 중심으로 '선물 이관'에서 '자본시장통합'으로 논의방향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그러나 2003년 거래소 통합이 정부의 공식방침이 된 뒤에도 '통합'논의 역시 순탄하지 못했다.
증시 통합을 곧 선물거래소의 해체로 여긴 부산지역 정서의 반발, 통합에 따른내부부담을 우려한 각 시장 노조의 반발 등이 주된 장애물이었다.
2003년 3월 각 시장의 현 형태를 유지하는 '지주회사형 통합안'이 제시된 지 두달여만에 '단일법인 통합'으로 번복되면서 지역정서를 달래기 위해 수도권의 '동북아 금융중심건설'방침에도 불구하고 부산에 본사를 두는 방식으로 일단 갈등을 봉합했다.
19일 창립 주총과 임원선임에 이어 등기절차와 창립행사를 가지면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한국의 유일 자본시장으로 새롭게 출범하지만 정부가 명분으로 내세운'자본시장통합'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은 정부와 새 경영진이 짊어진 무거운 과제다.
◆ 효율성.국제경쟁력 제고가 통합의 최대효과
정부는 2003년 '증권.선물시장 선진화 추진계획안'을 내놓으면서 시장통합을 통한 거래비용감소와 이용자 편의 등 효율성의 제고를 그 이유로 제시했다.
매매, 청산,결제와 예탁,전산 등 지원기능은 물론, 회원가입, 증거금 관리 등도모두 분리돼있어 거래비용이 늘어나고 이용자들의 불편이 있을 수밖에 없기때문이다.
실제 지난 1999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증권거래비용은 미국의 3배 이상, 홍콩의 2배 수준이라는게 정부의 분석이다.
'글로벌경제'의 형성으로 자본시장간 경쟁이 거래소와 코스닥 같은 국내 시장간경쟁에서 국제 시장간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증시 통합의 명분으로 꼽힌다.
세계 자본시장의 3대 축인 뉴욕-런던-도쿄는 물론, 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의금융시장과도 경쟁해야 할 처지에 시장간 격벽이 설치돼 중복투자와 높은 거래비용이 발생하는 상태에서는 경쟁이 어렵기때문이다.
실제 홍콩과 싱가포르는 이미 여러 해전 통합거래소를 발족시키면서 거래상품의대폭 확장에 나서 2001년에는 홍콩증시가 거래소시장보다 먼저 한국증시 상장종목의종목별 옵션시장을 개설했는가 하면 증권거래소는 현재 중국기업의 상장을 추진하는등 국적을 불문한 자본시장간 경쟁이 이미 가속도를 내고 있다.
중견 자산운용회사의 한 임원은 "통합과정에서 여러가지 논란이 빚어지기는 했지만 단일시장형성으로 회원사들의 부담이 줄고 시장의 규모를 키우기 손쉬워졌다는점은 분명한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과거 서유럽 통합증시인 유로넥스트나 독일 증권거래소의 런던증시 인수추진 등에서 보듯, 자본시장 통합은 결국 자본시장 내부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 통합효과 검증, 내부통합이 당면과제
무엇보다 통합 거래소에서는 효율성과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통합의 명분을 실현하는 것이 향후 최대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증권가 안팎의 지적이다.
거래비용이나 회원사들의 부담을 경쟁시장 수준으로 낮추고 국제경쟁력은 제고하지 못한 채 '한 지붕 세 가족'으로 겉돌기만을 계속한다면 결국 거래소 통합이 '자리만들기'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때문이다.
자본시장의 장기 비전마련은 통합의 명분을 살리기 위한 본질적 과제다.
한국자본시장이 지난 수년간 국내 기업의 연이은 해외상장과 유수기업의 상장기피, 문제성있는 기업들의 코스닥시장 진입 등으로 400조원이 넘는 유동자금이 쌓여있는데도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을 제공하는데 실패했고 기업들의 자금조달시장으로서의 기능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기때문이다.
당장 국내외 기업들의 상장 활성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한국증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 마련, 통합 감시기능 구축에 따른 불공정 매매의 축출, 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벤처기업의 장으로서 코스닥시장의 부활 등이 비전에포함돼야 할 과제의 우선 순위에 올라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통합결실을 보게 된 만큼, 자본시장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기반을 시장참여자들과 함께 마련해나가게 될 것"이라고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