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에서 되살아난 '자연의 숨결'

在獨 화가 노은님 '물소리, 새소리'展 현대갤러리서

'먹이 찾는 새'

재독 간호사로 1970년 한국을 떠난 후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함부르크 국립 조형예술대 늦깎이 미대생으로 입학, 현재 이 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화가 노은님(61)이 4년 만에 한국 개인전 '물소리, 새소리'를 12일부터 연다. 그는 3년간의 간호사 생활을 접고 미대에 가서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면서 화가로 성장했다. 파울 클레와 칸딘스키의 제자였던 한스 티만 교수는 "너같이 이상한 학생은 처음 봤다"고 면박을 주면서도 그를 총애했다. 물고기ㆍ꽃ㆍ새ㆍ개구리 등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붓질과 대담한 색채로 자연을 그리는 그의 작품에 대해 1980년대 독일의 평론가들은 '동양의 명상과 독일 표현주의의 만남'이라고 극찬했다. 그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1980년대. 함부르크 조형예술대 초빙교수로 갔던 백남준이 그를 눈여겨보고 한국 화랑에 들러 "독일에 노은님이라는 그림 잘 그리는 여자가 있다"고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굵은 묵선(墨線)으로 간결하고 힘있게 자연을 그려 온 그가 이번 전시에는 더욱 밝고 화사해진 작품을 들고 왔다. 같은 대학 출신인 게르하르트 바취 교수와 결혼한지 5년째인 그의 행복한 일상을 그림에 옮겨놓은 듯 하다. 남태평양으로 떠난 신혼여행지에서 본 열대어를 캔버스 한 가득 그린 '예쁜 물고기들', 거대한 새 한 마리가 주변을 서성이며 무엇인가를 찾는 모습을 그린 '먹이 찾는 새' 등 2호 크기의 소품부터 120호 크기의 대작까지 130여점을 선보인다. 남부 독일 미헬슈타트에 있는 250년 된 고성(古城)을 빌려 여름이면 작업실로 쓰는 그는 주변의 자연을 캔버스에 그대로 담았다. 부엌 뒤편으로 흐르는 개울엔 송사리가 뛰놀고 아침이면 온갖 새들이 식사 테이블에 모여드는 한적하면서도 조용한 그곳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태우고 녹이고, 잊고 또 들여다본다. 전시에 맞춰 그가 독일어로 썼던 시를 한국어로 번역해 그림과 함께 엮은 시화집 '물소리, 새소리'(나무와 숲)도 전시에 맞춰 출간됐다. 작품 가격은 100호(1호는 엽서크기) 기준으로 900~1,000만원 선으로 최근 미술시장 시세로 본다면 저렴한 편. 전시를 기획한 김성은 현대 갤러리 큐레이터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감성을 나누고 싶다는 작가의 뜻을 살리기 위해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31일까지. (02)2287-356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