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시절 가고 화창한 시절 왔다

재미교포 제임스 한 PGA투어 노던트러스트 오픈 우승


2003년 데뷔 늦깎이 무명 골퍼로 성적 못내 광고 회사 등 다니기도
PGA 2부 거쳐 2013년 빅리그 진출
연장 역전으로 첫 우승컵 거머 쥐어 마스터스·2016~2017 시즌 티켓 따
딸 출산 앞둔 아내에게 값진 선물


세 번째 연장전이 벌어진 14번홀(파3). 8m쯤 돼 보이는 거리를 굴러가던 볼이 홀 속으로 사라지자 제임스 한(34·한국명 한재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4m 퍼트를 남긴 더스틴 존슨(미국)의 모습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던 그는 존슨의 볼이 빗나가자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늦깎이 무명 골퍼의 설움까지 한 방에 날려버린 천금의 우승 퍼트였다.

재미교포 제임스 한은 2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CC(파71·7,349야드)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노던트러스트 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2타를 줄인 그는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로 연장전에 들어가 폴 케이시(잉글랜드)와 더스틴 존슨을 차례로 돌려세우고 정상에 올랐다.

제임스 한은 서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연습장을 운영한 부모의 손에 이끌려 네 살 때 골프를 시작한 그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골프팀에 진학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대학 졸업 후 프로로 전향한 뒤 3년간 변변한 수입이 없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백화점에서 여성용 구두를 팔기도 했다.

2007년에는 한국을 찾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뛰기도 했다. 당시 9개 대회에 출전해 5차례 컷을 통과했을 뿐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다시 캐나다 투어로 무대를 옮겨 2008년과 2009년 활동했다. 캐나다 투어 시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묵던 숙소에서 컴퓨터를 켜고 일자리를 구한 일도 있었다. 2008년 200달러가 전 재산이어서 캐디에게 수당으로 줄 돈을 빌려야 했던 그는 그 대회에서 8위를 차지해 3,000달러를 받아 감격했던 일화를 이날 PGA 투어 홈페이지를 통해 들려줬다. 2009년 캐나다에서 2승을 거둔 그는 미국 PGA 2부 투어를 거쳐 2013년 '빅 리그'에 진출했다.

PGA 투어에서도 2013년 상금랭킹 110위, 지난해 123위로 간신히 투어 카드를 지켜내는 수준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3년 피닉스 오픈 16번홀에서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춰 실력보다는 쇼맨십으로 화제가 됐다.

그는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승까지 차지하며 거액의 상금(120만6,000달러·약 13억4,000만원)을 받았다. 또 오는 4월 개막하는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출전권과 2016-2017시즌까지 투어 카드를 확보했다. 특히 우승 직후 딸 출산예정일을 3주 앞둔 '예비 아빠'임을 밝힌 그는 "이렇게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참가한 대회에서 우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면서 "아버지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흥분된다. 오늘 이후 집으로 달려가 아내와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한의 우승은 쉽지 않았다. 선두에 4타 뒤진 공동 7위로 출발한 그는 4번홀(파3) 그린 가장자리에서 친 17m 퍼트를 홀에 떨어뜨리는 등 11번홀까지 버디만 4개를 잡아 선두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존슨을 비롯한 선수들이 상위권에 몰리면서 큰 고비를 맞았다.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는 마지막 2개 홀에서 보기-보기를 기록해 1타 차로 연장전에 합류하지 못했다. 존슨은 마지막 홀에서 3m 안쪽의 버디 퍼트를 놓쳐 우승을 확정하지 못하고 연장에서 패했다. 두 번째 연장전에서 케이시가 먼저 탈락한 가운데 제임스 한은 세 번째 연장전에서도 존슨보다 먼 거리를 남겼지만 기어코 퍼트를 성공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연장전에 돌입하기 직전 제임스 한은 또 한 번 무명의 굴욕을 겪었다. 사인을 받으려는 갤러리에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존슨, 케이시, 그리고 '어떤 선수'가 연장전을 벌이게 됐다"고 답했다는 것. 제임스 한은 멋진 우승으로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알린 셈이다.

한편 공동 3위에서 우승에 도전했던 배상문(29)은 전반 버디 2개를 잡았지만 후반에 3타를 잃어 4언더파 280타를 기록, 2타가 모자라 연장전에 나가지 못하고 공동 8위로 대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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