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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기가 위태하나마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출구전략(경기부양을 위한 양적완화 종료) 논쟁에도 본격적으로 불이 붙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내 매파 인사 등은 올해 안으로 출구전략을 끝내지 않을 경우 물가 상승은 물론 시중은행에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사실상 출구전략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은 경기회복세가 느리다며 양적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제임스 불러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출구전략이 미뤄질 경우 혈세로 은행에 매년 500억달러(약 54조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FRB는 시중은행으로부터 1조6,000억달러의 지급준비금을 보유하고 있고 양적완화가 계속되면 1년 후에는 2조5,000억달러까지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FRB가 출구전략을 1년 후 시행해 현재 0.25%인 기준금리를 2%까지 올릴 경우 시중은행에 이자로만 500억달러를 지급해야 하고 그 이자는 국민의 지갑에서 나올 것이라는 게 불러드 총재의 주장이다.
불러드는 "이는 미국 대형 은행들의 전체 수익보다 큰 금액"이라고 꼬집었다. FT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혈세로 은행에 돈을 수혈해준 악몽이 떠오르는 발언"이라고 평가한 뒤 "FRB 내 출구전략 논의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FRB 내에서 조속한 출구전략을 주장하는 인사는 불러드뿐이 아니다. 15일 샌드라 피아날토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양적완화로 금융기관의 과다대출ㆍ시장왜곡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올해 안에 자산매입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에스터 조지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양적완화가 금융시장의 불균형 심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우려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도 나오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안드레스 돔브레트 이사는 18일 "초저금리를 장기간 유지하면 자산거품이 일어날 수 있다"며 "위기탈출 기미가 보이면 출구전략 구사를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돔브레트는 "미국 모기지담보부증권의 거품이 빠지며 전세계 금융시장을 위기로 몰아넣은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미국의 '돈줄'을 쥔 버냉키 의장은 여전히 양적완화를 두둔하고 있다. 그는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실업률이 8%에 육박하는 등 미국경제는 건강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며 "FRB의 적절한 화폐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앨런 크루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도 출구전략이 이르다는 주장에 간접적으로나마 힘을 실어줬다. 그는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회복된 게 아니라 회복 중"이라며 "정부지출의 갑작스러운 축소는 경기의 급격한 둔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다음달 1일부터 발동되는 시퀘스터(정부지출 자동삭감)를 겨냥한 발언이지만 미국경제가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을 정부 최고위 경제인사가 확인한 셈이 돼 출구전략에 대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어느 쪽이 승리할지는 21일 공개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1월 의사록에서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FOMC 내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양적완화 조기종료 가능성이 처음 언급된 가운데 1월 회의에서 출구전략 논의가 본격화됐는지, 시기상조라는 공감대가 이뤄졌는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한편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출구전략과 관련해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18일 "지금까지의 지표들을 봤을 때 역내수요가 악화되고 있다"면서도 "저금리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주택을 비롯한 자산시장에 거품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유로강세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급부상하면서 드라기의 고뇌는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