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가에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고 있다. 미국이 우방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공격하게 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심화되면서 뉴욕 증시는 상승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특히 이번 주 27일에 있을 유엔 무기사찰단의 안보리 보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8일 연두교서 발표 등 이라크와 관련한 주요 정치적 일정을 앞두고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투자자들의 이목이 전쟁 관련 소식에 쏠리면서 기업 실적 호전 등 호재 역시 약발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24일 아마존 닷컴이나 스타벅스 등이 기대 이상의 분기 실적을 공개했음에도 주요 지수들이 3% 안팎의 폭락세를 보인 것은 투자자들의 관심 우선 순위에서 펀더멘털 조차 밀려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날 다우지수는 전일 대비 2.85%(238.46포인트) 떨어진 8,131.01로 장을 마감 했는데, 이 같은 낙폭은 지난해 10월 16일 이후 3개월 만에 가장 큰 것이다. 또 나스닥지수는 3.32%(46.14포인트) 하락한 1,342.13를 기록했으며, S&P 500지수는 2.92%(25.94포인트) 떨어진 861.40으로 장을 마감했다. S&P 500지수의 이날 낙폭 역시 지난해 9월 27일 이후 가장 큰 것이다.
◇투자자들, 시장 참여 꺼려=월가에서는 올해 경기 전망이 개선되고 있는데다 기업 실적 역시 양호하기 때문에 전쟁이란 변수만 없다면 뉴욕 증시는 상승세를 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고조되는 전쟁 분위기는 이 같은 호재를 시장이 무시하게 만들고 있다.
뉴욕 증시의 트레이더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있으며, 특히 24일 증시가 폭락세를 보인 것도 이라크가 화학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 때문으로 보고있다.
물론 이라크전 우려를 희석시킬 만한 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유엔 안보리에 이라크 무기사찰 기한을 수 개월 연장해 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역시 이라크에 대한 선전포고 등 강경한 내용을 담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미 행정부가 걸프 지역에 대한 병력 파견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민에 대해서도 비상 철수 준비령을 내리는 등 전쟁 준비에 속도를 내면서 투자자들의 심리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달러화 약세도 주가 하락 부추겨=달러화 약세에 따른 환차손 우려로 글로벌 투자자금이 미 증시로부터 이탈하는 것도 악재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투자자금 이탈은 증시 수급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추가적인 달러 약세를 유발, 자금 이탈 규모를 확대시키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 달러화는 지난 24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 당 1.0840 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3년만의 최저치다. 특히 달러화는 이라크 전운이 고조되면서 24일을 포함해 9일 연속 하락했는데, 이는 유로화 창설 이래 최장 기록이다.
전쟁 분위기 고조에 따른 금으로의 투자자금 이동도 증시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 24일 금 2월 물은 전일보다 3.70 달러 오른 온스 당 368.40달러를 기록, 지난 1996년 12월 31일 이후 최고의 시세를 보였다.
금이 유력한 헤지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금값은 지난해 25%나 올랐으며, 올 들어서 만도 5.8% 오르는 등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뉴욕 증시가 별다른 반등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면 금으로의 자금 이동은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제지표=이번 주에는 유엔 무기사찰단의 이라크 보유 무기 보고,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이슈가 즐비한데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1월 소비자신뢰지수, 2002년 4ㆍ4분기 GDP 등 앞으로의 증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각종 지표도 쏟아진다.
29일에는
▲1월 컨퍼런스보드 소비자신뢰지수
▲신규주택판매 현황
▲FOMC 회의 등이 예정돼 있으며, 30일에는
▲4분기 GDP
▲4분기 개인소비 등이 발표된다. 또한 31일에는 1월 미시건대 소비자신뢰지수가 예정돼 있다.
FOMC 회의는 올들어 열리는 첫 회의로 금리 조정 가능성은 낮지만 최근의 미국 경제 상황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에서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는 4분기 GDP가 어떻게 나오느냐 여부도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