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리고 싶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희망의 눈이 된다면 마라톤 풀코스 완주도 힘들지 않아요."
보통 사람은 한 번도 달성하기 어려운 마라톤 풀코스(42.195㎞)를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과 100회 가까이 완주한 김순임(59)씨. 그녀는 시작장애인 마라토너와 함께 뛰는 가이드러너들의 봉사모임 '해피레그(Happy leg)' 회장을 맡고 있다. 내년이면 환갑이지만 아마추어 마라톤과 가이드러너계에서는 대모로 불린다.
통영 출신인 그는 남편 직장문제로 서울로 올라온 후 외로움을 달랠 겸 취미로 달리기를 시작했으나 오래지 않아 공인 마라톤 대회를 완주하는 실력을 갖췄다. 지난 2008년 국내서 열린 국제 마라톤 대회를 5일 앞두고 시각장애인인 차석수씨가 함께 뛸 주자를 찾지 못해 애태운다며 제안이 들어온 것이 가이드러너와의 첫 인연이 됐다. 당시 함께 뛴 기록은 4시간2분.
"처음에는 가이드러너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시각장애인들이 달리고 싶어하는 열정도 이해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같이 완주한 후 느끼는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봉사모임 해피레그를 아마추어 마라토너들과 결성하고 2011년부터 회장 자리도 맡고 있다. 매주 화·토요일 서울 남산 등에서 시각장애인들의 훈련 도우미로 활동하고 거의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이드러너로 완주하고 있다. 그동안 장애인들과 함께한 레이스 거리는 줄잡아 4,000㎞. 이달 중순 열린 국제 마라톤에서도 장애인 차승우씨와 빨간 끈을 손목에 매고 달렸는데도 4시간 이내 완주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재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에 등록된 시각장애인들은 100여명, 해피레그 가이드러너들은 80여명 정도다. 달리고 싶어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도 더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장애를 극복하고 마라톤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장애인들이 상당히 많다"며 "더 많은 봉사자들이 동참해 장애인들을 도와주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이드가 되어주는 것이 처음에는 두려울 수 있다"며 "하지만 같이 뛰어보면 일반인들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녀와 달리 마라톤과는 인연을 맺지 못한 남편과 아들 두 명은 건강을 염려해 말리고 있지만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올해 2월 마라톤 풀코스 완주 100회를 돌파했으며 보통 100㎞가 넘는 울트라코스(정규 42.195㎞보다 먼 거리 코스)도 지난해 100회 완주 목표를 달성했다. 내년 2월까지 하프코스 100회도 이룰 계획이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마라톤 열정에 대한 질문에 그는 "여러 사람과 함께 땀 흘리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며 "완주한 후에 느끼는 희열은 그 어떤 스트레스 해소법보다 강력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2~3년 가이드러너로 더 봉사한 후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 마라톤은 건강을 위해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지속하기로 마음 먹었다. 무엇보다 여럿이 함께 뛰면서 얻는 즐거움에 대한 소중함과 나이 들수록 품위를 잃지 않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다.
그는 "같은 모임 사람들은 '품위 있는 마라톤 걸(girl)'이라는 의미의 애칭 '품마걸'로 부른다"며 "시각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을 유지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